상영작 리뷰

시민평론단 - 비전

<베일러> : 흙냄새 속에서 삶과 죽음을 나란히 바라보다

By 황준성
도시에서 죽음은 늘 저 멀리, 단단한 벽 바깥에 있는 것처럼 느껴진다. 하지만 영화 <베일러>가 발을 딛고 있는 농촌의 들판에서 삶과 죽음은 특별한 사건이 아니다. 그것은 마치 마당 한가운데, 흙과 거름의 냄새 속에 나란히 놓여 있으며, 영화는 그 둘을 자연의 무심한 순리처럼 같은 호흡 위에 얹어 둔다.

제목의 ‘베일러’는 볏짚이나 건초를 둥글고 단단하게 압축해 묶어내는 농기계다. 들판에 흩어진 풀을 긁어 모아 토해내는 기계. 그런데 영화 속 사람들은 그 둥근 짚뭉치를 저마다 다르게 부른다. 누군가는 마시멜로라고 부르는 사람은 없냐고 묻고, 다른 누군가는 그런 싱거운 이름 따위는 없는 것 같다고 받는다. 제각기 다른 말들 사이에서 끝내 통일된 이름조차 얻지 못한 채 굴러가는 노동의 풍경. 영화는 바로 이 헐겁고도 투박한 경계에서 출발한다.

 

은주(김슬기)는 퇴사와 뜻밖의 임신이라는 무거운 사연을 안은 채, 선배 창호의 권유로 한달 간의 농번기 일을 돕기 위해 농촌으로 향한다. 그녀에게 주어진 일은 굉음을 내며 앞서가는 베일러의 궤적을 따라 포터를 모는 것이다. 영화는 서사의 극적인 인과를 쌓아 올리는 대신, 인물이 그 낯선 시간과 공간에 머무는 방식을 긴 호흡으로 응시한다.

새벽의 축사에서 소를 돌보고, 거친 사내들과 둘러앉아 밥을 나눠 먹고, 딱히 목적도 없는 시시한 농담을 날려 보낸다. 김슬기 배우의 연기는 이 건조한 리듬 속에서 빛을 발한다. 그녀는 미세하게 흔들리는 시선과 망설이는 몸짓으로 은주의 틈을 채워 넣는다. 설명이 생략된 그 고요한 빈자리들은 관객들이 자신의 호흡을 얹어 포개어 놓고 저마다의 이야기를 상상한다.

 

모순적인 말이지만 <베일러>의 영상은 건조하면서 따스한 온기를 품고 있다. 카메라는 광활하고 아름다운 풍경 앞에서 늘 한 발짝 물러서서 거리를 둔다. 그 담담한 거리감은 스크린 속 자연이 너무 아름다워 감히 다가서지 못하고, 자연을 낭만적인 배경으로만 소비하지 않으며, 각자의 자리와 속도를 존중하며 한 걸음 물러서서 지켜보겠다는 영화의 태도처럼 다가온다.

은주가 논두렁을 지나며 자신이 “악어가 된 것 같다”고 읊조릴 때도 자연은 인간의 자조 섞인 농담 따위엔 아랑곳없이 제 갈 길을 간다. 농촌에서 생과 사는 거창한 비극도, 숭고한 기적도 아니다. 핏덩이 송아지가 거친 숨을 내쉬며 태어나고, 어미 고양이가 볏짚 틈에서 새끼를 품는 일은 흙먼지 날리는 논밭의 노동과 동일한 무게로 취급된다. “새끼도 못 낳으면 벌써 멸종했겠지”라는 인간의 무심한 한마디는, 감상주의를 걷어낸 이 영화의 자연관을 가장 투명하게 압축한다.

 

은주는 도시의 삶을 회고하며 이웃과 엘리베이터에서 눈을 마주치는 일조차 숨 막히게 불편했다고 털어놓는다. 계단만 있는 곳을 찾아 평생 숨어 살다 조용히 늙어 죽고 싶다는 그녀의 체념에, 창호는 자신 역시 흙먼지 날리는 이곳에서 늙어 죽을 거라며 “좋겠네, 부럽지”라고 덤덤하게 되받는다. 전봇대에 걸린 채 쉼 없이 돌아가는 작은 바람개비를 보며 은주가 누군가의 애틋한 선물일 거라 낭만적인 상상을 펼칠 때도, 창호는 전기 기사가 그냥 걸어 둔 장치일 뿐이라고 현실을 들이민다.

낭만과 현실, 도시의 피로와 시골의 투박함이 한 프레임 안에서 가볍게 스치고 부딪힌다. 그러나 두 사람의 관계는 세속적인 연애의 문법이나 명확한 언어로 매듭지어지지 않는다. 서로에게 온전히 가닿지는 않으면서도, 그렇다고 아주 외면하지도 않는 그 미묘한 거리. 영화는 그 이름 붙지 않은 감정의 모호함을 조용히 긍정한다. 어찌 보면 사람의 관계는 그럼 모호한 거리로 연결되고 유지되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결국 <베일러>는 거창한 사건의 파동 대신 담담한 순리의 흐름을 보여주는 영화다. 투박하고 무심한 밥상과 낡은 식당에서의 술자리, 가끔 도시로부터 걸려 오는 안부 전화의 여백 속에서 사람들은 각자에게 부여된 노동을 묵묵히 수행하고, 각자의 몫인 외로움의 중력을 견뎌낸다. “사는 게 왜 이렇게 심심하냐”는 혼잣말이 헛헛한 웃음과 씁쓸한 뒷맛을 동시에 남기듯, 영화는 삶의 거대한 균열 앞에서 성급하게 값싼 위로나 해답을 내놓지 않는다.

 

자연은 여전히 무심하도록 아름답고 또 냉정하다. 도시에서 죽음이 닫힌 문 바깥으로 밀려나 있던 것과 달리, 이 거친 마당에서는 죽음조차 풀냄새, 흙냄새처럼 발 밑에 스며 있다. 스크린의 불이 켜지고 극장의 어둠을 빠져나온 뒤에도, 그 투박하고 눅진한 흙냄새는 한동안 마음의 결을 떠나지 않은 채 오래도록 맴돈다.


 

BNK부산은행
제네시스
네스프레소
한맥
네이버
CGV
파라다이스 호텔 부산
한국거래소
드비치골프클럽 주식회사
트립닷컴
아이앱 스튜디오
두산트리븐센텀
팔라티움
Ministry of Culture, Sports and Tourism
Busan Metropolitan City
Korean Film Council
BUSAN CINEMA CENTE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