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민평론단
<멜트다운>은 배반과 전복의 영화다. <멜트다운>은 칠레에 전지훈련을 온 열네 살 소녀의 실종과 그 수색 과정을 다룬다. 이때 영화는 소녀의 실종을 탐문하면서 소재의 특성상 관객이 기대하는 바를 배반하고, 이를 통해 소재가 은유하는 역사적 흐름에 대한 대중의 인식을 뒤집는 데까지 나아가고자 한다.
우선 <멜트다운>은 눈을 중심 소재로 한다. 영화가 시작되자 새하얀 단색 화면이 나오고, 뒤이어 세비야 엑스포에 출품된 칠레 빙하의 채빙 과정이 아카이브 형태로 뒤따른다. 이후 본격적인 극적 서사가 시작되는데, 소녀 선수가 새하얀 트랙을 경쾌하게 타고 내려오는 장면은 이 영화에서 가장 아름다운 장면이다. 하지만 이때 사람의 시선을 매혹시킨 눈은 사람들로 하여금 눈 아래 깔린 긴장관계를 제대로 인식하지 못하게 만든다. 여기서 주목할 것은 눈의 속성이다. 눈은 현실을 가리는 요소이자 언젠가는 녹아버릴 요소로서, 사람들은 눈이 녹을 때 그동안 가려졌던 진실이 드러나길 기대한다. 당연히 관객들 역시 해당 극을 하나의 미스터리물로서 간주하며 극의 진행과 함께 소녀의 실종에 관한 의문이 풀리길 기대한다. 하지만 영화는 영화 속 인물들과 관객의 그런 기대에 순순히 응하지 않는다. 영화가 진행될수록 소녀의 비극에 관련된 그날 밤의 실체는 모호해진다. 실종의 전후로 소녀의 엄마와 코치 그리고 그들이 머무는 리조트 사람들의 반응까지 얽히면서 오히려 사건의 실체는 복잡해져만 간다. 그리고 영화의 말미, 영화는 봄을 맞이한다. 겨우내 얼어붙었던 긴장이 풀려야 할 시점이지만, 역시 영화는 해결사로서 봄의 의미 역시 뒤집으려 한다. 눈이 녹고 봄이 오고 만발한 붉은 봄꽃이 푸르른 대지를 덮는다. 눈이 내린 자리에 이제는 봄꽃이 쌓인다. 무언가 드러나야 할 자리이고, 무언가 밝혀져야 할 계절이지만, 되려 계속 무언가가 쌓여만 간다. 이렇게 영화는 눈이 녹고, 봄이 옴에 따라 관객들이 기대하는 진실의 출현을 의도적으로 배척한다.
그리고 이 의도적인 배척은 관객들로 하여금 극의 서사가 놓인 시대적 변화에 대한 우리의 기대가 과연 타당한 것이었는지를 되짚어 보게 만든다. 소녀의 실종 사건이 일어난 공간으로서 첩첩산중의 리조트는 하나의 시대적 표상이다. 영화의 배경으로서 1992년은 칠레의 독재 정권이 막을 내린 직후이다. 리조트 사람들은 그 시대를 통과하던 칠레인들의 기대를 압축적으로 보여주는 존재다. 이들은 독재 정권의 종식 이후 진정으로 세계화되어가는 칠레의 모습을 엑스포를 통해 보여주고자 하며, 리조트를 현대화하고 상업화하여 새 시대의 과실을 누리고자 한다. 그들은 독재 정권 종식을 계기 삼아 새하얀 도화지처럼 새로운 시대에서 새로운 출발을 하고자 도모한다. 그런데 그 새하얀 도화지 아래에서 실종 사건이 벌어졌고, 그 해결은 유야무야 되고 있다. 영화는 영화 속 실종 사건 위로 계절의 변화를 겹치고, 다시 그 위에 시대의 변화를 겹치며 관객들이 시대의 변화를 관통하는 하나의 징후로서 소녀의 실종을 바라봐주길 기대한다.
프랜시스 후쿠야마는 그의 저서 《역사의 종말》에서 역사의 변증법적 발전은 자유민주주의 등장으로 완결되었다고 주장한다. 1990년대는 격동의 시대였다. 소련이 붕괴되었고, 칠레와 한국을 비롯한 여러 나라들이 민주화되었다. 이후 지구는 다 같이 세계화의 시대로 힘찬 발걸음을 내딛었다. 그런 시대의 변화 위에서 한 소녀의 실종 사건을 조망하는 영화 <멜트다운>은 우리로 하여금 역사의 발전이 완결되었다는 앞선 주장을 다시 한번 곱씹게 만든다. 정말로 역사의 발전은 종언했는가? 이 시대의 변화 속에서 우리가 놓친 것, 의도적으로 모른 척하고 있는 것은 없는가? 그리고 이 질문은 비슷한 시기 민주화의 결실을 성취했다고 평가받는 오늘날의 한국을 살아가고 있는 우리에게도 전혀 무관한 질문이 아닐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