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민평론단
프로이트의 환자 중에서 가장 유명한 여자 이름은 ‘도라’이다. 도라는 환각과 기침, 목이 쉬고 우울한 증세를 보였으며 자살 충동이 있었고 프로이트는 무의식과 꿈의 해석으로 실제 치료에 적용했다고 알려져 있다. 그러므로 이 이름은 명명이 아니라 호명이다. 요양을 하기 위해 도착한 섬에서 현지인 부부에게 도라를 소개하는 장면에는 도라의 피부병이 정신과 연관되어 있다고 말하는 아버지의 대사가 있다. 두 명의 도라는 18세라는 나이도 같고 친하게 지내는 가족이 있다는 설정도 같다. 이 영화를 이해하려면 정신분석이라는 난수표가 필요하다는 친절한 안내이다. <도라>는 정주리 감독의 전작들보다 모호하므로 이 영화를 관람한 후의 느낌도 매우 다르게 나타날 가능성이 높다.
도라는 아버지의 후배 연수, 그의 아내인 일본인 나미, 이들의 쌍둥이 아이들과 여름의 바닷물과 햇살을 즐기며 발진이 점점 나아지기도 한다. 아버지의 권유로 화가였던 연수의 초상화 모델이 되어주기도 한다. 연수는 도라를 보고, 도라는 창 밖의 나미를 보는 시간이 계속된다. 바라봄은 다른 차원의 감정을 불러일으키고, 화실의 공간은 긴장으로 가득 찬다. 어느 순간 응시는 결핍이 추동하는 패티시로 이어진다. 프로이트의 기호들로 가득하다.
도라가 앓는 병은 의학적으로 증상과 징후에 모두 해당한다. 겉으로 보이지 않지만 환자가 주관적으로 느끼는 불편함은 증상이라고 하고, 눈으로 보여 진단이 가능하면 징후라고 한다. 징후는 병원에서보다 인문학에서 더 많이 들을 수 있는 단어가 되었다. 소재나 사건만이 아니라 배제되거나 누락 된 문제를 읽어내고 숨겨진 갈등까지 살펴보는 것이 징후의 독해라고 할 수 있다. 이 섬에서는 도라의 징후인 발진과 수포 아래 억압된 감정들이 깨어나고 자신을 발견하는 과정이 이어진다. 프로이트는 당시의 도라에게 치료를 해주지 못하고 히스테리라는 말만 남겼지만, 정주리 감독은 도라가 능동적인 욕망의 주체로 다시 태어나도록 오이디푸스 콤플렉스 이론을 비틀고 변주한다. 도라를 연기한 김도연 배우에게서 ‘전이’를 경험하게 된다. 영화적 임상 실험이 이루어진다. 도라의 물집이 터지는 쇼트를 목격하면서 머릿속에서는 도파민이 화산처럼 폭발하는 경험을 하게 된다.
<도라>는 <도희야>를 계승하는 부분이 있다. 섬이라는 공간과 다양한 인종의 단역도 다시 등장한다. 심지어 도라가 흰 옷를 입고 춤추는 씬은 도희에게 바치는 오마주로 느껴진다. 어린 소녀를 향한 순수함이라는 오인을 부수는 것도 공통점이다. 도희를 작은 괴물 같다고 말하는 지역 경찰의 대사가 있었을 정도로 해설까지 해주었다. 금기를 위반하고 경계를 넘는 소녀들은 매혹적이지만 동시에 두려운 ‘여성괴물’이 된다. 정주리 시네마틱 유니버스의 화두이다. 도희와 도라는 묻는다. “사랑을 위해서 당신은 어디까지 해보았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