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민평론단 - 비전
구유 감독이 산수 영화라는 장르를 개척했다면, 박송열 감독은 가내수공업 영화라는 장르를 개척해 나가고 있다. 영화가 하나의 산업으로 자리를 잡은 상황에서 감독의 이런 시도는 그 자체로도 매우 독창적이다. 배우를 제외한 모든 작업을 홀로 해내는 그의 독특한 제작 방식은 <사랑의 지평선 너머로>에서도 이어진다. 처음에는 낯섬의 미학이 있었겠지만, 이제 그의 가내수공업 영화는 진화한다.
혼자하는 작업의 어색한 부분이 줄어든 자리에 그의 아들이 후욱 치고 들어왔다. 그것도 임신부터 딱 돌까지라고, 이쯤이면 이건 반칙에 가깝다. 세상 귀여운 아이의 모습을 있는 그대로 보여주다니. 아이의 옹알이 소리를 비롯해 울며 칭얼대는 모습조차 사랑스러운 갓난 아기를 주인공으로 내세우는 건 정말 비교 불가의 영역이다.
부부의 소리 없는 다툼과 아이가 없을 땐 쩝쩝거리며 먹던 밥을 소리 죽여 먹는 모습은 육아로 인해 변한 일상이다. 육아 유경험자라면 우리도 저런 때가 있었는데 공감이 되고, 그렇게 영화는 한 시절을 떠올리게 만든다. 육아 전쟁을 벗어나 이제 대학생과 사춘기 중학생과 도대체 언제 클지 모르는 초등학생을 아들로 둔 터라 그 전쟁 같던 시절이 떠올라 혼자 흐뭇하게 웃을 수 있다는 게 정말 다행이다.
아이를 재우기 위해 사투하는 부부의 모습은 우스꽝스럽지만 예민했던 첫 아이를 육아할 때를 떠올리게 한다. 잠자는 아이가 깰까봐 조심조심 걷고, 문도 서서히 닫고, TV 소리는 가장 약하게 하고, 세상 상전도 이런 상전이 없었으니 말이다. 하지만, 아이를 재우려 내 배 위에 올려 놓으면 쌔액쌔액 숨 쉬는 소리와 콩닥거리는 아이의 심장, 그렇게 따뜻한 온기가 전해지면 하루의 고단함이 눈 녹듯 녹아 내렸다.
비장한 모습으로 임무를 교대하는 부부의 모습은 육아전쟁을 함께 겪는 누가 봐도 동지의 모습이다. 누군가에게 모든 걸 내맡길 수도, 그럴 수도 없다. 잠에서 깨 칭얼거리는 아이를 달래야 하고, 끊임없이 기저귀를 갈아야하고, 모유를 수유하거나 분유를 타 먹여야하는 과정은 그걸 겪어보지 않은 사람이라면 도저히 알 수 없는 힘듦이고, 도저히 혼자서는 헤쳐나갈 수 없는 영역이다.
아이가 배변을 제대로 하지 못해 전전긍긍하고(아 그러고보니 난 첫째가 뒤집기를 너무 늦게 해서 뒤집기 학원이라도 보내야 하는 거 아니냐며 함께 걱정하기도 했구나), 희안한 자세로 달래야만 잠을 자는 아이를 포대기에 안고 흔들어줘야 하는 그 고됨이란, 아 그래서 어르신들이 뱃속에 있을 때 더 편하다고 그렇게 얘기해줬구나라고 깨닫게 됐으니. 그렇게 동지가 된 부부는 이제 서로의 허물에 대해서도 이해하고 덮어준다. 동지란 원래 그런 거니까.
아이의 성장을 보며 함께 기뻐하는 가족들과 한 살 생일로 끝나는 영화는 태어난 아이에게 모두 축복 같은 장면이 될 것이다. 그리고 온 우주에 축복인 일이기도 한다. 나 역시 축하를 보내드리며, 이 가족에게 건강과 안녕이 늘 함께 하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