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영작 리뷰

시민평론단

<불타는 거인들> : 언제나 몽환을 경험케하는 인장

By 신종민

 본인의 모든 장편 연출작 <만타 레이>(23회), <모리슨>(28회)과 함께 부산을 찾았던 푸티퐁 아룬펜 감독이 3년만에 BIFF로 돌아왔다. 베니스 오리종티 섹션에서 월드 프리미어로 공개되었던 아주 따끈따끈한 신작 <불타는 거인들>(<Yak mai>,<The Burning Giants>)과 함께 말이다.

 

 이 영화는 극장(cinéma가 아닌 théâtre)에서 시작한다. 뭔가 흰 연기 같은 것이 피어오르는데 스위치를 올리고 환풍기가 돌아가자 태국 서부 산악지역에 그 흰 연기가 퍼지기 시작한다. 펜데믹을 연상시키는 설정. 그 연기를 마시면 병에 걸려서 마스크를 껴야하고 격리와 통제선이 생기고 강제 이주, 불응시 구금, 체포, 감금도 진행된다. 그 임무를 함께 한 군인 락(Pakapol Srirongmuang)과 산악 마을에서 이주한 자매 애포(Phunthida Phairuangkij), 애바(Waywiree Ittianunkul)가 이 영화의 핵심 인물이지만 그들은 영화를 한참 남겨놓고 퇴장하고 다시 극장으로 돌아온 영화는 라마끼안의 새로운 버전을 보여주고 야차 툴리는 신화를 빠져나와 현재의 우리 곁에 머무른다.

 

 왕족과 군부 그리고 종교...현재 타이에서 영화가 어디까지 건드릴 수 있는지 알지는 못하지만 푸티퐁 아룬펜 감독의 영화는 항상 아슬아슬한 느낌이 들었다. 이번 영화는 이전 작품들보다 훨씬 더 대범해지고 용감해졌다. <만타 레이>에서의 맹그로브 숲 아래 얕은 바다에서 빛을 내던 신비한 조약돌, <모리슨>의 어릴적 기억이 남아있는 오래된 호텔 안 ​바(bar)​가 다시 화려한 조명과 음악에 휩싸이고, 이번엔 흰 연기로 시작해 극장과 타이의 국가적 대서사시인 라마끼안을 통과하며 몽환의 세계를 경유해야만 다다를 수 있는 엔딩이라는 그​의 영화적, 연출 스타일적 인장은 더욱 공고해졌다. 이젠 익숙한 타이영화 특유의 은유, 몽환과는 결을 달리하는 강직함이 그의 영화에는 있다.

 

 로힝야족(<만타 레이>), 혼혈아(<모리슨>) 등 푸티퐁 아룬펜 감독은 항상 소수와 소외에 관심을 가져왔지만 이번 카렌족 이야기에서는 좀 더 정치적으로 도발적인 태도를 보인다. 이전 영화에서는 분위기와 은유로만 이야기하던 사건을 상부에 보고 체계를 밟은 군인이 직접(물론 장면은 없고 소리만) 행하는 시퀀스로 연출해 삽입하고 라마끼안까지 건드리는데... 차별과 소외의 근원이, 확대 해석하자면 250년 전 현 왕조, 현재 타이가 자리잡으면서 시작된 게 아니냐라고 말하는 느낌마저 든다. 거기에 흰 연기, 펜데믹 방역을 연상시키는 설정 등을 얹어 위장과 희석을 꾀하지만 타이 상황과 정서를 생각해보면 굉장히 위험한 용기로 읽히는 건 어쩔 수가 없다.

 

 야차는 힌두교와 불교, 기타 종교와 설화에서도 등장하는 힘세고 사나운 신이다. 하지만 영화 속에서 야차 툴리는 라마 1세에게 쫒겨 인간 세계로 도망치는 것으로 묘사된다. 인간 세계에서 살아가는 툴리의 모습에는 많은 메타퍼가 읽힌다. 하층민으로 전략해 육체 노동을 해야하고 또 본 모습을 바꿔 적응까지 해야하는... 그의 고되고 스산한 표정 위에 타이 사회에서 로힝야족, 혼혈아, 카렌족의 모습이 오버랩된다. 야차가 숲과 물을 보호하며 땅을 지키는 존재이기도 하다는 점에서 감독이 이 영화를 통해 개발과 문명화, 도시화 문제까지 이야기하고 싶은 것이 더 있을 거 같은 느낌도 받는다.

 

 베니스가 사랑하는 푸티퐁 아룬펜 감독은 세 편의 영화로 그의 연출 스타일이 뭔지를 확실하게 보여줬다. 작고 아무도 큰 관심을 두지 않는 것들을 소중히 되돌아보는 그의 태도도 충분히 알 것 같다. 조금만 더 보편적인 역사나 사건, 이야기로 그의 관심이 옮겨올 때를 조용히 기다려본다. 굳이 사전 정보를 검색해보지 않아도 되는, 오직 영화만으로도 객석의 관객을 설득하고 사유하게 하는 날이 온다면 오리종티가 아닌 경쟁 부분에서 그의 영화를 만날 거 같다는 생각이 들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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