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현록 감독의 <새>는 미스터리 추적극이라 할 수 있다. 학생들이 집단 추락사하는 사건이 발생하고 죽은 학생들과 같은 장소에 있던 혜정(심수빈)은 “새들이 있었다”는 말을 반복한다. 왜 혜정은 추락사를 증언하면서 새를 언급하는 것일까? 새와 학생들의 죽음 사이에는 대체 어떤 연관이 있는 걸까? 이 미스터리는 관객에게 당혹감을 주면서 호기심을 자아낸다. 그러나 영화는 명쾌한 진실을 찾아서 제시하는 대신 우리를 점차 예상치 못한 곳으로 이끈다.
영화를 보면서 자연스럽게 떠오르는 작품은 알프레드 히치콕 감독의 <새>(1963)다. 두 작품은 같은 제목을 공유할 뿐만 아니라, 새가 마치 일종의 재앙처럼 나타난다는 공통점을 가진다. 히치콕의 영화에서 새가 왜 인간을 무차별적으로 공격하는지 설명되지 않는다. 이와 비슷하게 손현록의 영화에서도 왜 새가 학생들을 죽게 만드는지, 또는 과연 새가 사건과 정말 관련이 있는지가 영화가 끝날 때까지 밝혀지지 않는다. 새를 통하여 이해할 수 없는 재앙을 다룬다는 점에서 손현록 감독은 히치콕의 <새>를 자신의 영화 안에 끌어온 것이라 말할 수 있다. 다만 그는 그것을 모던한 연출을 통해 독자적인 방식으로 변용한다.
<새>는 한국 사회의 과도한 입시 경쟁과 학업 스트레스 문제를 다룬다. 익숙한 주제이지만 영화는 이 문제를 다루는 일반적인 경향을 비켜간다. 통상 청소년의 학업 문제를 다루는 영화라면 청소년 세대의 인물을 중심에 둘 것이다. 그러나 <새>에서 중심인물로 설정된 예옥(강경헌)은 교사이며 학부모인 기성세대의 인물이다. 영화는 초반에 예옥의 강압적인 태도와 차별적 언행, 자기합리화를 드러낸다. 그녀는 자신의 학생들과 자식들에게 있어 성적을 최우선시하는 사람이다. 학교에서 죽은 학생들이 공부를 하지 않았던 학생들이라며 냉정하게 말하고, 그녀의 집에서도 자신의 말을 따라 공부를 열심히 하는 아들과 그렇지 않은 딸 혜정을 냉혹하게 차별한다.
영화는 예옥을 통해서 강압적인 기성세대에 대한 비판을 하는 손쉬운 길을 가지 않는다. 예옥에게서 받은 학업 스트레스를 견디지 못한 아들이 자살하는 비극이 영화에서 벌어진다. 그 이후로 강철처럼 단단하고 차가운 그녀의 내면은 복잡하고 이중적인 균열을 일으킨다. 그녀는 아들의 죽음에 대해서 책임이 있는 인물이지만 자식을 잃은 강한 상실감을 겪는다. 자신이 아들에게 준 스트레스를 인정하지 않는 모습을 보이면서도 아들의 죽음에 대해서 죄책감을 느끼는 것 같다. 영화가 진행될수록 그녀의 내면은 위태로워지고 점점 무너져 간다.
영화는 예옥이 인식하는 현실과 환각의 경계를 모호하게 한다. 여기에 믿음의 문제가 들어선다. 집단 추락사 사건의 원인이 정말로 새들에게 있다고 보느냐는 기자의 질문에 예옥은 ‘그냥 그렇게 믿고 싶어서요’라고 말한다. 이는 아들의 죽음에 대한 책임 회피일까? 아니면 무기력한 자신을 어떻게든 이끌어 문제를 해결하고자 하는 절박한 의지일까? 아니, 애초에 정말로 새들에게 사건의 원인이 있는 걸까? 예옥은 사건의 진실을 추적하면서도 진실이 무엇인지 알지 못한다. 영화는 현실과 환각의 모호한 경계를 통해 예옥의 내면에 일어난 균열을 보여주며 나아가 다른 내밀한 진실을 그녀가 마주 보게 한다.
영화는 한국 사회의 고착화된 문제에 대한 메시지를 직접적으로 던지는 대신, 사회의 불안한 조짐이나 상태를 드러낸다. 영화 속 뉴스에는 전국에서 발생하는 학생 집단 추락사와 더불어 그것의 원인을 파악하지 못해 문제를 본질적으로 해결하지 못하는 무능한 정부, 한국 사회의 인구 감소 문제 등이 언급된다. 분명 사회에 재앙이 닥쳐오거나 경고 신호가 울리는데도 이를 제대로 해결하려는 누군가를 기대하기 힘들다.
<새>는 한국 사회에 대한 정서적 반응을 영화 특유의 불안한 정서로 승화한 영화처럼 보인다. 이러한 면에서 예옥의 무너지는 내면은 한국 사회에 대한 정신병리학적 반응으로 볼 수 있다. 아들의 죽음을 힘들어하는 예옥은 점차 그 죽음의 원인을 새라고 믿게 된다. 딸인 혜정마저 실종되자 그녀의 깊어지는 상실감과 더불어 그녀의 믿음은 더욱 강해진다. 그녀가 믿는 ‘환각’은 그녀의 위태로운 존재를 겨우겨우 지탱하는 것이 되며 그녀가 그 환각에 매혹된 것은 그녀의 불안하고 위태로운 상태의 증명이다. 그녀를 그 상태로 만든 '재앙'은 현실의 사회적 문제와 닿아있다. 예옥의 무너지는 내면을 통하여 영화는 한국 사회의 저변에 흐르는 불안하고 위태로운 정서를 감각하게 한다.
덧붙이면, 영화의 엔딩을 파국으로 볼지 희망으로 볼지는 관객에게 달려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