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영작 리뷰

시민평론단 - 비전

<사랑의 지평선 너머로> : 사랑에 조응하는 고개짓

By 서금란

말을 하다 보면 상대의 고개가 작게 움직이는 순간이 있다. 맞장구라 부르기엔 고요하고, 동의라 부르기엔 가벼운 몸짓. 그러나 그 작은 끄덕임 하나에 말을 이어 갈 힘이 생긴다. 내뱉은 말이 어딘가에 닿았다는 방증의 신호이기 때문이다. 거기에는 섣부른 판단도, 어설픈 조언도 없다. 그저 듣고 있다는 사실만이 있다. 그래서 가끔은 긴 위로보다 이 찰나의 몸짓이 더 오래 남는다. <사랑의 지평선 너머로>는 이 사소한 신호를 영화의 중심에 둔다. 이 영화에서 사랑은 거창한 고백이 아니라 작은 응답으로 증명된다.

 

화면 속 인물들은 서로 마주 보며 고개를 끄덕인다. 무심히 스쳐 가던 이 동작은 영화 내내 되풀이되며 어느새 하나의 단단한 약속으로 자리 잡는다. 말 대신 무언의 몸짓이 오가는 사이, 인물들은 각자가 통과해 온 하루의 고단함을 조용히 가늠한다. 클로즈업 교차 편집 역시 같은 맥락에 놓여 있다. 한 사람의 얼굴이 화면을 채우면, 곧이어 다른 얼굴이 등장해 그 자리를 이어받는다. 컷이 바뀔 때마다 시선이 포개어지고, 반복은 영화의 고유한 리듬을 형성한다. 이는 서로의 존재를 확인하는 호흡처럼 읽힌다. 그 호흡 틈새로 삶의 하중을 견뎌낸 짙은 피로감이 배어나오지만, 서로를 향한 시선만큼은 결코 흔들리지 않는다. 흑백과 컬러가 교차하며 화면의 질감이 불규칙하게 요동치는 와중에도 두 사람의 눈맞춤은 단단하게 중심을 잡는다.

 

이 견고한 조응의 감각은 일상의 매체가 스크린 안으로 개입할 때 한층 짙은 여운을 남긴다. 지친 태영이 스마트폰에 담긴 아이의 영상을 보며 희미한 생기를 되찾는 장면이나, 아이의 옹알이를 녹음해 상대에게 들려주는 순간이 대표적이다. 특히 옹알이가 흘러나올 때 스크린의 시각적 정보를 완전히 차단해 버리는 암전 숏은 깊은 잔상을 남긴다. 빛이 사라진 캄캄한 어둠 속에서 오직 아기의 목소리만이 극장을 채운다. 이미지가 사라진 자리에는 일상의 작은 온기가 들어찬다. 인물이 잠시나마 숨을 고르며 기대어 쉴 수 있는 찰나의 위안을, 관객도 함께 경험하게 된다.

 

인물들이 이토록 미세한 위안에 기대어야만 하는 이유는 스크린 밖의 현실이 지독하게 냉혹하기 때문이다. 영화는 픽션의 견고한 틀 안으로 현실의 파편을 충돌시킨다. 쫓기듯 오토바이 배달을 하고 도로 위에서 버스와 날 선 실랑이를 벌이는 모습은 다큐멘터리의 한 장면처럼 날것의 감정을 뿜어낸다. 흥미로운 점은 이 장면에서 영화가 사운드를 철저히 배제한다는 것이다. 도로의 소음도, 핏대 세운 목소리도 들리지 않는 기이한 침묵 속에서 인물들의 거친 몸짓만이 전시된다. 세상이 무음으로 침묵할수록, 서로 마주보며 주고받는 끄덕임의 무게는 더욱 선명해진다.

 

<사랑의 지평선 너머로>를 보고 극장을 나서며 끄덕임이 지닌 의미를 다시금 곱씹어 보았다. 네 삶의 고단함을 내가 온전히 짊어질 수는 없어도, 네 마음만은 알고 있다는 공감의 선언. 그런 의미를 조심스럽게 덧대어 본다. 내 마음을 알아주는 단 한 사람만 곁에 있다면 이 버거운 삶도 어떻게든 살아지는 법이니까. 작은 몸짓에 담긴 짧은 긍정이, 간신히 버텨내는 하루를 조금은 덜 외롭게 만든다. 영화는 이러한 미세한 진동으로 사랑의 방식을 증명한다. 당신의 피로를 나도 알고 있다는 듯, 영화가 조용히 고개를 끄덕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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