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영작 리뷰

시민평론단 - 비전

<풀문> : 감당하겠다는 결심

By 이제열

정지혜 감독의 <풀문>은 사춘기 소녀의 성장통에 관한 영화다. 영화를 보는 내내 각 캐릭터들이 마주하는 상황들에 깊게 이입하게 되지만 영화는 그들이 감내하고 있는 아픔을 너무 심각하게 풀어가려고 하지 않는다. 친구들과 웃고 떠들며 춤추는 모습이 자주 등장한다. 영화에서 이런 씬들이 나오면 관객들은 자연스레 그 행복의 정도만큼 혹은 그보다 큰 위기가 들이닥칠 것이라는 예상을 하게 된다. 예상이 빗나가지는 않는다. 혜미는 채 자라지 못한 사춘기 소녀에게 전부인 가족과 친구 관계에서 큰 갈등을 겪게 된다. 하지만 영화는 그 갈등을 전면에 세우면서도 웃고 떠들고 춤추는 모습을 그저 위기를 돋보일 낙폭을 만들기 위한 영화적 도구로 전시하지 않는다. 오히려 지금 내 앞에 주어진 순간을 누리는 일이 고통을 상쇄하는 방법이라고 말하는 듯 하다.

 

엔딩크래딧이 너무 빨리 올라간 느낌이 들었다. 아직 궁금한 캐릭터들이 많았다. 시종 밝은 톤을 유지하고 있는 영화이지만 각 캐릭터들이 겪고 있는 상황과 사건의 전개를 훑어보면 진짜 위기는 엔딩 크래딧이 올라간 이후에 예정되어 있을 것으로 보인다. 아니 반드시 찾아올 것으로 보인다. 캐릭터들이 맞닥뜨릴 위기가 예상되고 있으며, 그 캐릭터의 깊은 내면을 아직 보지 못했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영화는 그 거대한 위기의 순간을 스크린으로 옮겨담지 않았다. 오히려 무엇이 정말로 위기인지에 대해서 묻는다.

 

혜미는 자신을 드러내고 싶은 욕망과 자신을 숨기고 싶은 욕망을 동시에 가지고 있다. 혜미의 숨기고 싶은 욕망은 단순히 부끄러움과 같은 미성숙한 욕망이 아니다. 혜미는 앞으로 어떤 일들이 닥쳐올지를 잘 알고 있다. 자신이든 자신의 가족이든 타인들의 따가운 시선의 중심에 서지 않아야 상처받지 않을 것임을 잘 알고 있다. 그 상처를 미연에 방지해야하기에 숨기고 싶어한다.

 

그러니 느닷없이 찾아온 은우의 엄마는 나에게 방해가 된다. 우리 가족에게 위기를 초래할 원흉으로 보인다. 그녀의 의도는 불순하고 그녀의 생활은 어딘가 망가져 있다는 것을 혜미는 너무 잘 안다. 그래서 은우에게 묻는다. 왜 따라주냐고. 말리지 않냐고. 은우는 말한다. "엄마가 좋아하잖아." 아직 철이 들지 않은 어린아이처럼 생각없어 보이는 말같아 보이기도 하지만 혜미는 은우를 이해하게 된다.

 

혜미의 엄마, 아빠도 은우의 엄마도 심지어 혜미 자신도 스스로를 드러내고 싶은 욕망이 있다. 그 욕망을 억누르는 것이 위기에서 비껴가는 길임을 알고 있어도 불순한 누군가의 침범이 나를 괴롭힐 것이 자명해보임에도 오히려 그 욕망을 표현할 수 있도록 지켜주는 것은 위기를 감당하겠다고 결심과 행동이다.

 

그러니 영화는 그 뒤의 일을 그릴 필요가 없다. 아니 그리지 않아야 한다. 내 앞에 주어질 고통을 감내할 각오를 다지는 지금을 즐기는 현재를 꺾고 싶지 않다. 영화는 영화속 혜미가 문을 걸어잠그고 엄마를 지켜준 것처럼 고통의 대문을 닫고 혜미를 지켜주고 있다.​ 

BNK부산은행
제네시스
네스프레소
한맥
네이버
CGV
파라다이스 호텔 부산
한국거래소
드비치골프클럽 주식회사
트립닷컴
아이앱 스튜디오
두산트리븐센텀
팔라티움
Ministry of Culture, Sports and Tourism
Busan Metropolitan City
Korean Film Council
BUSAN CINEMA CENTE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