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민평론단 - 비전
아버지의 임종이 가까워졌다는 의사의 말에 우리 형제가 모두 모였지만 다른 지역의 요양병원에 계신 어머니는 오시지 못하였다. 불현듯 어머니가 노래 부르는 모습을 녹화한 영상이 생각나서 그것을 재생했다. 치매로 자식마저 잘 알아보지 못하는 어머니가 문득 정신이 드셨는지 아주 맑은 얼굴로 ’섬마을 선생님‘을 불러서 녹화해 놓은 터였다. 그 노래를 들으시면서 아버지는 눈을 감으셨다. 그리고 한 달도 채 되지 않아 어머니도 소천하셨다. 주위 사람들은 어머니가 아마 아버지의 부름을 듣고 가셨을 거라고 이야기했다.
<화곡사>의 이 소장이 자기 죽음을 예감하고 자기가 평생 동안 일한 화장장으로 왔을 때, 그는 벽 사이에 피어난 노란 민들레를 애틋하게 바라보며 어루만진다. 조용필의 노래 <일편단심 민들레>의 가사 ‘긴 세월 하루 같이 하늘만 쳐다 보니 그이의 목소리는 어디에서 들을까’가 바로 연상된다. 그 후 식당에 간 이 소장은 자기 아내인 복례의 말을 듣는다. 이 소장은 고인을 화장하고 자기 아내는 유족에게 음식을 내어놓던 시절에 늘상 듣던 아내의 말이다. 그런데 복례의 모습은 화면에 등장하지 않는다. 그것은 복례가 이미 세상을 떠난 사람이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이 소장에게 복례의 목소리가 들리는 것은 평생을 같이 산, 자기 삶의 굽이굽이를 온전히 기억하는 부부이기 때문이다. 마치 어머니가 아버지의 부름을 들었다고 사람들이 생각하는 것처럼.
수의를 입은 이 소장과 화장장에서 일하는 신부, 승려, 미연이 같이 잔치를 벌이는 듯한 장면은, 어떤 이가 죽은 후 상갓집에서 벌어지는 왁자지끌한 우리네 풍습을 닮았다. 망자가 이승을 잊고 저승으로 잘 가라는 소망을 담은 행위처럼 보이기도 한다. 그날 밤 이 소장이 죽었을 때 화장장에서 일하는 사람들 각자의 세속적 욕망에 따라 3일장을 치르지 않고 이 소장을 바로 화장하려 한다. 그러나 이 소장의 육신은 타지 않는다. 태워도 태워도 타지 않는다. 이승을 떠나 저승의 길을 떠나려 하지 않는 것이다. 하지만 3일째에 상여가 도착하고 이 소장을 상징한 꼭두가 상여에 실렸을 때 이 소장은 이제 이승을 떠나 저승의 길을 간다. 복례가 만지는 따스한 손길을 느끼며. 그리고 남은 자들은 이 소장이 마지막으로 남긴 말을 따라 삶을 살아간다.
<화곡사>는 ‘花곡사’이다. 망자를 꽃으로 표현하고 있다. 이 영화의 망자는 노인이므로 노인의 죽음을 꽃으로 드러내는 것이다. 그리하여 일상에서 주목받지 못하는 고령화 사회의 노인들의 죽음과 그들의 애틋한 작별에 주목하게 한다. 자본주의 시선으로 삶의 공간마저 대상화하는 현실에서 인간의 생애를 존중하게 한다. 게다가 지난한 과정을 거칠 수밖에 없는, 5년이라는 기간 동안 준비한 스톱모션 애니메이션으로 만들어진 점과 현실성 풍부한 경상도 말맛을 살려 관객의 감동까지 일으킨 영화이기에 그 가치는 배가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