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민평론단
30년을 떠돈 이야기가 드디어 빛을 본다. <레이 건>은 <인크레더블>(2004)과 <라따뚜이>(2007)를 연출한 브래드 버드의 8년 만의 신작이자, 그가 터너 피처 애니메이션 시절부터 구상해 온 30년 간의 드림 프로젝트다. 30년 동안 축적된 그의 공력은 휘발되지 않고, 작품의 밀도를 높여 주었다. SF와 네오 누아르를 결합한 이번 작품은 장르의 공식을 충실하게 따라가는 고전적인 스토리텔링과 레트로 퓨처리즘 풍의 미래 이미지가 완벽하게 어우러진 매혹적인 작품이다.
비행 자동차와 거대한 프로펠러를 단 열차가 하늘을 누비는 최첨단 미래 도시 메트로피아. 이곳에서 인간은 다양한 외계 종족과 함께 살아간다. 곤충형 감시 로봇이 수사 업무를 대신하는 시대에도 전직 경찰 레이 건(샘 록웰)은 여전히 직접 발로 뛰는 구식의 수사 방식을 고수하는 사설탐정이다. 결국 그의 탐정 사무소가 파산 직전에 내몰린 어느 날, 그는 팝스타 비너스 노바(스칼렛 요한슨)의 네 번째 남편 아놀드 돔(바비 카나베일)에게서 아내의 불륜을 조사해달라는 의뢰를 받는다. 그러나 레이는 외눈박이 외계인 조수 아이-라 카독(톰 웨이츠)과 함께 비너스를 추적하던 중 아놀드의 죽음을 마주한다. 그렇게 사건의 내막은 점점 더 미궁에 빠진다.
<레이 건>은 명확하게 장르적 뼈대를 네오 누아르에 두고 있다. 능력은 있지만 일이 잘 풀리지 않는 사설탐정 레이는 스칼렛 요한슨의 매력적인 목소리가 돋보이는 팜므파탈 캐릭터에 매료된다. 부유층의 스캔들과 연쇄 살인, 그리고 표면 아래의 거대한 음모를 파헤치는 설정은 장르적 관습과 공식을 충족한다. 특히 SF와 네오 누아르를 결합한다는 점에서 <레이 건>은 <블레이드 러너>의 계보를 잇는다. “미래에 온 걸 환영해”라고 말하는 비너스 노바의 홀로그램 광고는 <블레이드 러너>의 홀로그램 전광판을 떠올리게 한다. 다만 <블레이드 러너>의 비에 젖은 LA는 어둡고 음습한 도시의 이미지를 구현했다면, <레이 건>의 메트로피아는 구역마다 다른 건축 양식을 보여주며, 만국박람회의 낙관주의적인 활기를 띠고 있다. 또 마이클 지아키노의 재즈 음악은 <긴 이별>(1973), <택시 드라이버>(1976) 등 1970년대 네오 누아르의 대표 테마 곡들을 떠올리게 하며 영화의 정서적 중추를 이룬다.
<레이 건>은 시종 활기와 재치로 가득하지만, 영화 속 세계는 그리 밝지 않다. 브래드 버드는 현시대의 문제를 가상의 미래 도시에 외삽해 지금을 다시 들여다보게 한다. 다양한 외계 종족이 살아가는 미래 사회는 여러 인종이 함께 살아가는 미국을 보는 듯하다. 브래드는 이곳을 혐오와 차별이 가득한 곳으로 묘사한다. 외계인 슬럭시는 합법적인 클럽 운영을 시도하지만, 외계인이라는 이유만으로 사업자 등록을 하지 못하고, 아이라는 응급 상황에도 인간 전용 병원의 입원을 거부당한다. 외계인에 대한 편견은 미국 내부에 여전히 남아 있는 이민자에 대한 차별을 연상시킨다.
그뿐만 아니라 영화는 기술을 통해 민주주의를 해체하는 테크노 파시즘의 문제를 드러낸다. 광고계의 거대 기업 메가맥스는 알고리즘과 인공지능을 통해 잠재적 소비자에게 적절한 광고를 제공한다. 하지만 메가맥스는 이에 그치지 않고, 기술을 통해 개인의 사생활을 감시한다. 그들은 불법적인 방식으로 모은 데이터로 대상을 복제하고, 사실을 조작한다. 기술의 발전을 이룬 테크 기업은 사람들에게 추앙받지만, 어둠으로 진실의 빛을 가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