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영작 리뷰

시민평론단

<불타는 거인들> : 야차들은 지금, 어디에 있을까

By 김정화

 

국가는 누구를 보호하고, 누구를 추방하는가. 재난이 발생하면 국가는 안전을 명분으로 통제와 격리를 시행한다. 그러나 보호의 실천이 언제나 정당하게 이루어지는 것은 아니다. 때로는 원주민들을 위험한 존재로 규정하고, 그들이 예로부터 살아온 터전을 빼앗는 합법적 절차로 작동한다. 푸티퐁 아룬펭 감독의 <불타는 거인들>은 정체불명의 흰 연기와 감염병이라는 재난적 설정을 통해 공권력의 이면을 드러낸다. 영화는 태국 서부 산악지대의 카렌족을 이야기의 중심에 놓고, 그들의 강제 이주와 삶의 터전 상실을 국가의 안전 정책이라는 명분 아래 벌어지는 폭력으로 그려낸다. 여기에 태국의 국가적 서사인 ‘라마끼안’을 결합함으로써, 오늘의 추방이 과거의 건국신화와 무관하지 않음을 암시한다. 영화가 궁극적으로 묻는 것은 감염병의 정체가 아닌, 누구의 생명을 보호하고 누구의 삶을 희생시킬 것인가를 결정하는 권력의 정체다.

 

영화는 태국 서부를 뒤덮은 흰 연기로 시작한다. 연기에 노출된 사람들은 마치 보이지 않는 불에 덴 듯한 증상을 보이고, 정부는 감염 확산을 막는다는 명분으로 산간 지역에 대한 통제에 나선다. 마스크와 격리소, 통제선과 체포가 이어지고, 산에서 살아가던 주민들은 삶의 터전을 떠나야 한다. 이 과정에서 국가는 주민들의 생명을 보호하는 주체인 동시에 그들의 삶을 파괴하는 주체가 된다. 감염병이라는 위협은 실재하지만, 위협에 대응하는 방식은 결코 중립적이지 않다. 누구를 격리하고 누구의 이동을 제한하며 누구의 집을 불태울 것인지는 행정의 결정이면서 정치적 선택이기 때문이다. 특히 영화에서의 연기는 실체가 명확하게 밝혀지지 않은 채 서사를 움직인다. 관객은 연기의 성질과 감염의 원인을 확신할 수 없으며, 정부의 조치가 과연 정당한지 판단할 근거도 충분히 얻지 못한다.

 

그러나 불확실성은 오히려 영화의 문제의식을 선명하게 만든다. 재난 앞에서 공권력은 신속한 대응과 질서 유지를 내세우지만, 그 과정에서 가장 쉽게 통제되는 이들은 약한 사람들이다. 산악지대에 거주한다는 이유로 카렌족은 위험 지역의 주민이 되고, 그들의 오랜 삶은 공공의 안전을 위해 제거해도 되는 대상으로 취급된다. 이러한 모순은 남아 있던 주민과 순찰하던 부대장의 대비에서 더욱 뚜렷해진다. 감염을 막기 위해 산을 통제하던 권력의 담당자가 오히려 감염되어 죽음에 이르는 상황은 재난을 특정 집단의 위험성으로 환원하려는 시선에 균열을 낸다. 산에 사는 사람들을 잠재적 감염원으로 규정하는데, 영화가 겨누는 지점은 산에 사는 사람들을 잠재적 감염원으로 규정하고, 그들의 축출을 정당화하는 수단으로 활용하는 현실이다. 생명을 지키기 위한 행정이 오히려 삶의 조건을 파괴한다면 그 행정은 타당한가. 과연 안전이라고 부를 수 있는가.

 

영화의 후반부에서는 태국 전통 가면극 콘(khon)과 국가적 서사인 ‘라마끼안’의 세계로 진입한다. 이 급격한 전환은 처음에는 낯설게 느껴지지만, 영화의 정치적 의미를 새롭게 읽게 하는 중요한 장치다. 힌두 대서사시 ‘라마야나’를 바탕으로 형성된 태국의 ‘라마끼안’은 왕과 영웅, 전쟁과 승리를 다루는 신화적 서사다. 영화는 이 신화의 무대에 등장하는 야차를 통해 현실의 권력 관계를 비춘다. 금빛 갑옷을 입은 권력자들이 야차를 몰아내고, 패배한 야차는 인간 세계로 도망쳐 살아 남아야 한다. 신화 속 전쟁은 끝났지만 패자의 고통은 끝나지 않는다. 영화에서 야차 툴리는 신화의 무대에 머무르지 않고 현실의 세계로 걸어 나온다. 한때 거대한 힘을 지녔던 존재는 이제 하층민으로 전락해 육체노동을 하며 살아간다. 그는 인간 사회에 적응하기 위해 자신의 외형과 정체성을 바꿀 수밖에 없다. 송곳니를 뽑고 문신을 지우며 지배적인 질서가 허용하는 모습으로 자신을 재구성한다.

 

중요한 것은 야차가 본래부터 악한 존재이기 때문에 추방되는 것이 아니라는 점이다. 신화는 승자의 관점에서 적을 괴물로 만들고, 괴물을 물리친 행위를 영웅의 업적으로 기록한다. 그러나 패자의 자리에서 바라보면 그 이야기는 전혀 다른 의미를 갖는다. 영웅의 승리는 누군가의 패배이며, 왕국의 건설은 누군가의 터전 상실을 전제로 한다. 승자의 신화에서 악으로 규정된 존재는 자신의 이야기를 말할 기회를 얻지 못한다. 그들은 추방당한 뒤에도 자신을 추방한 세계의 규칙에 따라 살아가야 한다. 영화는 야차의 시선을 통해 국가의 건국 서사에서 삭제된 존재들을 불러내고, 영웅과 괴물이라는 익숙한 구분이 누구의 관점에서 만들어졌는지 질문하는 것이다. 이러한 야차의 형상은 카렌족을 비롯해 태국 사회에서 주변화된 소수자들의 현실과 겹쳐진다. 자신의 땅에서 밀려나고, 새로운 사회에 편입되기 위해 고유한 정체성을 감추어야 하며, 그럼에도 온전한 구성원으로 인정받기 어려운 사람들이다. 신화의 거인은 현실에서 힘없는 노동자가 되고, 무시무시한 송곳니는 제거해야 할 결함으로 바뀐다. 거대한 신화와 남루한 현실의 간극이 클수록, 권력이 만들어 놓은 정상과 비정상의 경계는 더욱 부조리하게 드러난다.

 

영화 속 야차에게 주어진 선택지는 자신의 모습을 지키거나 버리는 양자택일에 가깝다. 그는 인간 세계에서 살아남기 위해 송곳니를 뽑아 자신을 바꾸게 된다. 환대받기 위해 자신을 훼손해야 하는 존재의 역설을 보여준 것이다. 그럼으로써 산악지대의 카렌족은 감염병이라는 이유로 거주지에서 밀려나고, 신화 속 야차는 패배한 존재라는 이유로 자신의 세계에서 쫓겨난다는 의미망이 병치된다. 재난 서사에서 신화적 우화로 급격히 이동하는 방식은 관객에게는 낯설지만, 추방당한 자가 반드시 악한 존재인지 승리한 자의 서사가 과연 정의로운지를 되묻게 한다는 점은 분명하다. 송곳니가 뽑힌 야차들은 지금, 어디에 있을까.

 

 

 

BNK부산은행
제네시스
네스프레소
한맥
네이버
CGV
파라다이스 호텔 부산
한국거래소
드비치골프클럽 주식회사
트립닷컴
아이앱 스튜디오
두산트리븐센텀
팔라티움
Ministry of Culture, Sports and Tourism
Busan Metropolitan City
Korean Film Council
BUSAN CINEMA CENTE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