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영작 리뷰

시민평론단 - 비전

<아직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은> : 괜찮다는 안도

By 전은경

인적이 드문 차 도로 위에 대뜸 있는 벤치. 별 대수롭지 않을 그저 그런 벤치에서 특별한 일들이 생긴다. <아직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은>의 주인공인 은율은 자신의 고향인 거제의 벤치에서 미래의 일을 볼 수 있다. 미래의 일이라 하면 굉장히 거대하고 엄청난 사건일 것 같지만 은율이 보는 미래는 다르다. 그냥 우리의 일상 속 한 부분이고 별로 대수롭지 않은 사건이다. 어찌 보면 미래를 봐도 현재는 전혀 달라지지 않는다. 은율은 자신이 보는 미래의 사건에 대해 아무것도 하지 않으니까. 미래를 안다면 뭔가를 해야 하는 것일까? 안하면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으니 뭐라도 해야 하는 게 맞는 건가? 영화는 이 질문에 그냥 걷기만 해도 괜찮다는 안도를 보낸다.

고향인 거제로 내려온 은율은 동네를 유유히 산책한다. 느긋하게 산책을 하는 그녀의 뒤를 카메라는 유유히 따라간다. 마치 관객이 직접 산책을 하는 것처럼 지나가면서 보는 나무, 벤치, 저수지를 고요하게 응시한다. 몇 번 반복되는 산책에 우리는 각자 나름의 선을 만들게 된다. 예지한 미래의 어떤 순간도 은율에게는 일상을 이어주는 점들에 불가할 뿐이다. 영화는 ‘예지력’이라는 초현실적인 요소를 굉장히 현실적으로 나타낸다. 일상의 어떤 한 부분이며 내가 바꿀 수 없고 바꿀 필요도 없는 사건으로 표현한다. 때문에 관객은 은율이 미래를 보는 것에 주목하지 않고 그녀가 발 딛는 곳에 집중하게 된다.

미래를 보는 인물은 아이러니하게도 과거의 상처에 머물러 있다. 아픈 기억을 갖게 한 동창에게 왜 그랬냐 따져 묻고 그때의 일기장을 다시 펼쳐 본다. 어쩌면 과거에 매여있는 은율에게 미래를 보는 능력은 아무 일이 일어날 테니 다시 살아보라는 메시지였을 지도 모른다. 그래서인지 영화 후반부, 막막함을 토로하는 은율의 눈물에 쉽게 공감이 된다. 이제는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을 거라고 하는 벤치에 은율은 무력하게 울 수밖에 없다. 하지만 여행자는 오히려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은 것은 새로운 일이 생길 수도 있다는 가능성임을 말하며 그녀를 위로한다. 여행자의 말은 과거에 고여있던 은율을 미래를 더 이상 보지 않고도 현재로 나아가게 한다. 산책을 하며 만들어 갔던 무수한 점들은 선이 되어 은율에게 미래라는 트랙이 되었고, 이제 은율은 그 벤치에서 여행자처럼 다른 사람을 위로할 수 있게 되었다.

“어제는 끝났고, 내일은 멀었고, 오늘은 아직 모른다.”라는 한 드라마의 말처럼 현재의 시간은 아무도 모른다. 그래서 내가 아무 행동을 하지 않아서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고 자책할 필요는 없다. 영화는 고요한 동네를 조용히 응시하고 유유히 돌아다니며 우리에게 그냥 이렇게 무작정 걸어봐도 괜찮다고 말한다. 어디로 흘러가는지, 어디로 흘러갈지도 모르지만 결국 우리가 딛는 점들이 모여 선을 만들고 그 선이 쌓여서 일상이 될 테니까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는 말을 건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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