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지혜 감독의 <정순>은 연인을 위해 춘 춤을 담은 영상이 허락 없이 퍼지며, 한 여성이 남의 시선 속에 무너지는 이야기였다. <풀문>에서 감독은 다시 춤과 시선을 다루지만, 이번에는 춤이 훨씬 밝고 경쾌하게 움직인다. 주인공은 정월대보름 축제를 앞둔 열여섯 살 혜미(정민주)다. 댄스팀 센터에 서서 무대를 빛내는 것이 꿈이지만, 뜻밖의 사고로 그 바람은 깨지고 단짝들과도 서먹해진다. 혜미는 늘 남의 시선을 의식하며 춤추고, 반대로 엄마 인숙(김금순)과 아빠 형준은 주변 눈치를 전혀 보지 않고 흥겹게 춤춘다. 이야기는 두 가지 춤 사이를 오가며, 혜미가 남의 눈보다 소중한 것을 찾아가는 과정을 따라간다.
혜미의 춤은 남에게 보여 주기 위한 춤이다. 영화의 첫 연습 장면에서 댄스팀은 강당에 모여 있지(ITZY)의 <워너비>를 춘다. 남을 닮으려 하지 말고 나 자신이 되라는 노래인데도, 혜미는 줄곧 모두의 눈길이 모이는 센터만 바라본다. 마침내 그 자리를 얻었을 때의 환한 얼굴에는 주목받고 싶은 사춘기의 설렘이 그대로 담겨 있다. 시선을 신경 쓰는 곳은 무대 위만이 아니어서, 혜미는 흥이 많은 부모의 모습도 친구들에게 감추고 싶어 한다. 잘 보이고 싶은 마음과 들키고 싶지 않은 마음 모두, 혜미가 얼마나 남의 눈에 얽매여 있는지 드러낸다.
부모의 춤은 남의 시선과 상관없다. 엄마와 아빠는 집에서든 동네 사람들과 어울릴 때든 흥이 나면 아무렇지 않게 몸을 흔든다. 잘 추는지, 누가 보는지는 조금도 중요하지 않다. 그저 즐거우니까 신나게 춘다. 영화는 그런 부모를 불쌍하게 여기거나 우습게 그리는 대신, 누구보다 자유로운 사람들로 다정하게 바라본다. 혜미가 창피해하는 부모가 사실은 가장 행복하게 춤춘다는 점이 재미있다.
시간이 흐르며 혜미는 남의 시선이 전부가 아니라는 것을 조금씩 알아 간다. 무대를 잃은 뒤에는 친구들과 맞추던 춤으로도 쉽게 돌아가지 못한다. 그동안 감추기만 하던 부모를 가까이에서 마주하고, 어디서든 즐겁게 춤추는 모습에서 새로운 것을 배운다. 잘 보이는 것보다 내가 즐거운 것이 더 중요하다는 사실을 깨닫는 순간, 혜미의 표정도 한결 편안해진다. 영화는 깨달음을 대사로 늘어놓기보다 달라진 몸짓으로 자연스럽게 전한다.
혜미의 마지막 춤은 작품 전체에서 가장 빛나는 장면이 된다. 센터에 서려고 안간힘을 쓰던 처음과 달리, 이 춤에는 남을 의식하던 긴장 대신 함께 춤추는 순수한 기쁨이 가득하다. 잘 추려고 힘주지 않아도, 박수가 쏟아지지 않아도 혜미는 그 어느 때보다 자유롭고 아름답다. 누군가의 워너비를 꿈꾸던 아이는 그렇게 어센틱이 된다. 남의 시선에서 벗어나 진짜 내 춤을 찾아가는 열여섯의 성장은 보는 내내 사랑스럽고, 그 끝에 피어나는 웃음은 스크린 밖까지 긴 여운을 남긴다. 극장을 나서면 누구라도 남의 눈은 잠시 잊고, 혜미처럼 내키는 대로 어깨를 들썩이고 싶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