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영작 리뷰

시민평론단

〈로마 엘라스티카〉 : 망측하려거든 더 내려놓으세요

By 정소희

1982년, 뇌종양 진단을 받은 왕년의 스타 에디(마리옹 코티야르)는 이탈리아에서 촬영하는 SF영화에 출연하기로 한다. 열정적이고 충성스러운 메이크업 아티스트 발렌티나(노에미 메를랑)와 함께 영화를 찍는 과정은 애틋하고 몽환적인 몰락을 향해 달려가는 영상미와 노골적으로 망측하려고 해서 우스꽝스러운 극중극의 부조화가 뒤엉켜 있다.

 

 

‘35mm필름’으로 ‘로마’에서 찍은 ‘영화’와 ‘뇌종양’ 때문에 ‘수척’한 ‘여배우’는 다른 숏폼 미디어나 ott, 다른 야외활동으로 곧 멸종할거라 진단받은 영화와 제아무리 아름답고 스타의 아우라를 발산해도 나이가 들면 곧 교체되는 여배우를 운명론적으로 짝지었다. 부유하는 먼지가 자연스럽게 그레인 효과를 더해주고 교묘하게 번지는 빛과 초현실적인 색채는 이 시간대에 존재한 적 없는 세상을 보여주는 듯한 영상미를 구축한다. 〈​로마 엘라스티카〉​의 괴상하고 고전적 아름다움의 얼굴은 마리옹 코티야르의 것이지만 물 위에서 춤추고 달에서 날아다니던 샤넬이나 디올 광고보다는 BDSM, 블랙유머 코드로 종교적 위선을 비판한 데이비드 보위의 〈​The Next Day〉​ 뮤직비디오의 모습과 가까워 보인다. 마리옹이 드물게 앞머리를 냈고 여자 특수효과팀원, 발렌티나와 키스하고 희한한 렌즈를 착용하고 미래인간 분장을 했는데 뭐 이렇게 다양하게 보여주나 싶다가도 이내 다양하게 보여주셔서 감사하고 즐기겠다는 태도로 감상하면 얼추 〈​로마 엘라스티카〉​를 더 재미있게 보는 비책이 된다. 극중극의 각본을 담당하는 웬 예언자가 말하는 2026년의 모습은 상당부분 관객을 웃기기 위해 작정한 듯한 돌팔이의 믿지 못할 예언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외모에 대한 아주 진지한 비난인데, 극중극 유머로는 잘 어울리지만 ‘제정신이 아닌 것 같고 완전히 실패하는 와중에 에디/마리옹의 아우라로 진행되는 극’의 주제와 영화의 뼈대가 너무나도 선명한 나머지 최후의 한 방이 되지는 못한다. 베르트랑 만디코 감독이 너무 선명하게 어떤 주제를 다루고 싶은지 논리적으로 말이 되는 각본과 구조를 설계한 나머지 S급 뚝심 있는 B급이 되지는 못해 다소 아쉽다. 마리옹 코티야르의 우아하지만 서늘한 연기가 빛을 발하는 롱테이크가 훌륭해서 더 아쉽다. 좀만 더 무모해져 보지.

 

 

영화가 대놓고 망측한 것들을 관객에게 퍼주니 1980년대까지 이탈리아 영화가 황금기를 누렸다는 사실 말고 다른 데 주목해보자. 〈​로마 엘라스티카〉​라는 제목은 로마에서 자라는 특별한 고무나무가 존재한다는 인상을 준다. 에디가 로마에 만난 새로운 특수효과팀 팀원들은 〈​E.T〉​(1982)의 외계인 모형제작자 ’람발디’를 언급하는데, 〈도마뱀 피부의 여자〉에서 개를 해부하는 장면 때문에 동물학대로 루치오 풀치 감독이 고소당하자 개 모형(퍼펫)을 법정에 들고 가 감독의 무죄를 증명하고 할리우드로 진출한 전설적인 인물이다. 람발디의 업적이 빛나는 또 다른 대표작은 안드레이 줄랍스키의  〈​포제션〉​(1981)이다. 줄랍스키 감독은 코멘터리에서 람발디가 “분홍색 콘돔” 더미를 가져왔다고 언급한 적 있는데, 콘돔 재료가 ‘고무’다. 완성된 영상에 봉인됨으로써 절대적으로 영원히 지속되어야 할 존재와 비가역적이고 필연적인 변화로 인해 퇴장을 요청받는 존재의 극심한 대립이 에디의 몸과 정신을 격전지로 삼았다고나 할까. 에디가 촉수, 테이프와 뒤엉킨 난교 장면은 대놓고 아니 확실히 〈​포제션〉​의 그림자가 서려 있다. 그 외에도 에디의 신체에서 벌어진 변화, 극중극에서 활용되는 에디와 관련된 주요 요소들의 직접적인 상징의 일부도 CG가 아닌 특수분장, 고무 활용에 빚지고 있다. 고무는 삭긴 해도 관리하면 꽤 오래 간다. 영화의 삶과 죽음은 물론 관계, 인간의 삶과 죽음까지도 말이다. 

 

 

특수분장 팀과 가까워진 에디가 점점 발렌티나와 멀어져가는 쓰라린 과정은 주제나 결말과 논리적으로 정합해 비교적 순조롭게 진행된다. 자신의 힘으로는 이해할 수 없는 고통, 투쟁, 변화를 겪고 있는 대상을 지키고 사랑하려 애쓰는 노에미 메를랑의 야성적이고 세련됐지만 가냘픈 구석이 보이는 연기는 영화의 비이성적인 과속운전을 비교적 받아들일 만한 것으로 만들어준다. 영화로 무엇을 봤냐고 한다면 영화사의 흥망성쇠부터 멜라토닌을 먹고 꾼 꿈의 혼종이라고 답할 수 있을 것 같은데 그래서 잘 엉키고 기억에 몇몇 조각이 강하게 남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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