많은 선정작 중 참 아프고 아름다운 영화 두 편, 미겔 고메스 감독과의 인연, 그리고 올해 부산을 찾는 감독들의 좋은 작품들을 소개한다. |
끝으로 선정한 참 아프고 아름다운 영화 두 편 |
보고 나면 한동안 가슴이 먹먹해 아무 것도 하지 않고 그 영화만 생각하며 지내고 싶어지는 그런 영화가 있다. 올해 작품 선정을 위해 마감 일주일 전에 마지막으로 시사한 페드로 알모도바르 감독의 <룸 넥스트 도어>가 바로 그런 영화다. 영화제를 한 달 앞둔 시점에 그런 호사는 꿈도 못 꿀 일이다. 커피를 내릴 때나 버스를 기다릴 때 영화의 몇몇 이미지, 상대를 바라보는 배우의 표정, 큰 유리창에 투영되었던, 이미 세상에서 사라지기 시작한 주인공의 환영이 자꾸 생각나는 나는 잠시 숙연해지고 또 행복해진다. 알모도바르 감독은 첫 영어 영화에서도 본인의 색을 잃지 않는다. 감각적인 미장센, 비밀이 가득한 시나리오, 에드워드 호퍼 그림의 내부로 들어가게 만드는 촬영, 틸다 스윈튼과 줄리언 무어의 환상적 앙상블. 이 모든 것이 존엄사라는, 결코 쉽지 않은 주제의 절절하고 아름다운 멜로드라마 <룸 넥스트 도어>를 완성한다. |
<비기닝>(2020)의 조지아 여성 감독 데아 클룸베가쉬빌리의 신작 <4월>은 존재와 여성성 사이의 이분법과 수렴에 관해 천착한 작품이다. 지방의 산부인과 의사 니나는 의료사고로 내부 감찰을 받게 되고 그녀가 불법 낙태 시술을 돕고 있다는 소문이 돌기 시작하는 데에서 영화는 시작한다. 감독은 <4월>을 위해 영화의 배경인 소수민족이 사는 여러 마을을 돌아다니며 취재했고 캐릭터도 그곳에서 구체화했다. 니나 역의 수키타슈빌리가 단지 배역을 연기하는 데에 머물지 않고 캐릭터 자체를 구현하기를 원했던 감독은 그녀와 함께 산부인과 의사들을 만났고, 출산과 낙태의 과정을 직접 지켜봤으며, 병원 안뜰에 세트를 지어 아예 거기에서 거주하기도 했다. 여성과 여성성에 관해 이토록 깊고 아프고 치열하게 파고든 영화가 있었나. 데아 클룸베가쉬빌리의 <4월>은 그 제목처럼 무척 아프고 아름다운 영화다. |
미겔 고메스 감독을 처음 알게 된 건 2012년에 개봉한 <타부>(2012)를 통해서다. 그때도 극장을 나와 한참을 걸었었다. <타부>는 여전히 2000년 이후에 발표한 수많은 영화 중 가장 훌륭한 작품 중 하나다. 환상과 현실을 오가며 동화와 뮤지컬, 모험극을 넘나드는 감독의 첫 장편 <네게 마땅한 얼굴>(2004), 그리고 다큐멘터리와 픽션의 경계를 지우며 더 큰 정서적 울림을 만드는 두 번째 장편 <친애하는 8월>(2008)을 본 건 <타부>를 보고 나서다. 미겔 고메스 감독을 실제로 (멀리서) 본 건 2015년 칸영화제에서다. <천일야화> 3부작 중 한 영화가 끝나자 감독주간 상영장의 모든 관객이 엔딩 타이틀의 음악에 맞춰 감독을 향해 기립박수를 보냈다. 그 때였다. 양복 안주머니에서 반지를 꺼내 즉석에서 청혼 세리머니를 펼치는 미겔 고메스 감독. 반지의 주인은 <더 트스거오 다이어리>(2021)를 함께 만든 모린 파젠데이로 감독이다. 감독과 처음 말을 해본 건 코로나가 창궐하던 2021년 <더 트스거오 다이어리>를 선정하고, 온라인 GV의 모더레이터를 맡았을 때다. 범세계적인 대재앙 속에서도 작고 부서지기 쉬운 것만으로 영화를 만드는 것이 아직은 가능하다는 것을 이 영화는 보여준다. 미겔 고메스 감독과 처음 대면하여 만난 건 올해 칸영화제에서였다. <그랜드 투어>의 월드프리미어 상영이 있기 전이었고, 오후 네 시였고, 한 카페에서였다. 이런저런 얘기 끝에 감독님은 되도록 부산에 오겠다고 말씀하셨다. 끝인사 대신 감독님이 농담을 했다. “근데 아직 <그랜드 투어>를 못 봤잖아요? 혹시 영화가 안 좋으면 초청을 취소해도 됩니다. 진심이에요.” 세상의 모든 것을 하나로 잇는, 영화의 기적, 기적의 영화 <그랜드 투어>는 올해 칸영화제에서 감독상을 받았다.
미겔 고메스 감독님과 장편 전작을 부산국제영화제 관객에게 소개할 수 있게 되어 진심으로 기쁘고 행복하다. |
파트리샤 마쥐이 감독의 <보르도에 수감된 여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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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폴 상셰즈가 돌아왔다>(2018), <새턴 볼링장>(2022) 파트리샤 마쥐이 감독은 소셜 드라마이자 코미디 <보르도에 수감된 여인>에서 곧 운명이 얽히게 될 두 여인의 초상을 유려하게 그린다. 부르주아 계급의 알마는 이자벨 위페르가, 노동자 계급 출신의 젊은 엄마 미나는 압시아 헤지가 맡아 열연했다. 파트리샤 마쥐이 감독은 클레어 드니 감독에 이어 프랑스를 대표하는 여성 감독으로, 첫 장편부터 칸영화제 주목할만한시선에 초청되었으며 <트라볼타와 나>(1993), <폴 상셰즈가 돌아왔다>(2018) 등 수많은 걸작을 연출했다. |
로베르토 미네르비니 감독의 <버림받은 영혼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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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베르토 미네르비니 감독은 소외된 사람들에 관한 시적이고 서정적인 기록물 <경계의 저편>(2015)으로 평단의 극찬을 받은 감독으로, 미국에서 활동하는 이탈리아 거장이다. 부산국제영화제에서도 부산시네필상을 받았다. <버림받은 영혼들>은 전쟁 자체가 아닌 ‘개인’에 집중한, 참 ‘아름다운’ 전쟁 영화다. 영화를 위해 실제로 모든 배우들이 영화를 위해 전쟁 캠프를 만들어 함께 지냈다고 한다. <버림받은 영혼들>은 칸영화제에서의 첫 상영 이후 올해 가장 주목을 받는 영화 중 하나다. |
요한 흐리몬프러 감독의 <쿠데타의 사운드트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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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전체가 마치 웅장한 재즈 교향곡처럼 느껴지는 정치 스릴러 뮤지컬 영화다. <쿠데타의 사운드트랙>에서 감독은 방대한 자료들을 룸바와 재즈의 리듬으로 유려하게 엮으며, 역사를 쓰는 또 하나의 새로운 방법을 제시한다. 올해 암스테르담국제다큐멘터리영화제와 퐁피두 센터에서 감독의 회고전이 열릴 만큼 이미 유럽에서의 인지도가 대단한 감독이다. 부디 감독과 대화할 기회를 놓치지 마시길. |
<플로우>는 올해 칸영화제에서 평단과 관객의 찬사를 동시에 이끌어낸 작품으로, 안시국제애니메이션영화제에서도 관객상과 심사위원상, 음악상을 비롯해 무려 네 부문의 상을 휩쓴 애니메이션이다. 무엇보다 장면, 장면이 경이로운 영화다. 전작 <어웨이>(2019)와 <플로우>로 긴츠 질발로디스 감독은 미야자키 하야오의 대를 이을 애니메이션계의 거장이 되었다. |
감독은 리얼리티 TV 방송의 스타를 꿈꾸는 프랑스 소녀 리안의 초상을 그린다. 주인공의 리안은 마치 참전을 앞둔 아마존을 연상케 한다. 첫 장편으로 칸영화제 경쟁부문에 진출한 영화로, 젊은 관객이 공감할 수 있는 영화다. |
유명한 이탈리아 가수이며 작곡가이자 감독이자 배우인 마르케리타 비카리오 감독의 첫 장편으로, 음악을 사랑하는 18세기 소녀들의 연대와 그들의 발칙한 음악적 혁명을 흥미롭게 그린다. 유튜브에서 감독의 이름을 검색하면 그의 노래를 들을 수 있다. |
비토리오 데 시카의 <자전거 도둑>(1948)을 감동적이고 흥미롭게 오마주한 작품으로, 올해의 발견이라고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는 작품이다. <어느 파리택배기사의 48시간>과 함께 연이어 감상하는 것을 추천 드린다. |
뤼도빅 부케르마, 조란 부케르마 형제감독의 <그들 뒤에 남겨진 아이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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콩쿠르상을 받은 니콜라 마티외의 소설을 각색해 만든 감동적인 성장영화다. 세 번째 장편으로 베니스영화제 경쟁부문에 초청되었다. 특히 음악과 영화를 모두 좋아하는 시네필에게 추천하고 싶다. <그들 뒤에 남겨진 아이들>로 부케르마 형제는 프랑스 영화의 미래를 짊어질 차세대 거장이 되었다. |
탈룰라 H. 슈왑 감독은 노르웨이 오슬로 출생의 편집자이자 작가이기도 하다. <미스터 K>는 블랙 코미디와 기묘한 모험담의 조합으로, 크리스핀 글로버가 미스터 K로 열연한다. |
루이즈 꾸르보와지에 감독의 <사랑, 우유, 그리고 치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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칸영화제에서 많은 시네필이 입가에 미소를 지으며 이 영화에 관해 얘기했다. 선정작 중 가장 사랑스럽고 경쾌한 코미디로, 분명 부산의 모든 관객도 영화를 보면서 주인공 또똔느를 열렬히 응원하게 될 것이다. |
작년에 <사라진 소년병>으로 부산에 왔지만 이틀 만에 아들이 있는 이스라엘로 돌아가야 했던 대니 로젠버그 감독의 신작이다. 16살 이스라엘 소녀의 눈을 통해 감독은 전쟁이 남긴 참혹한 현실을 보여준다. |
“무엇보다 관객이 제 영화를 보고 눈과 얼굴, 발, 미소, 몸짓, 사람들, 동물, 그리고 풍경을 기억하며 사랑으로 가득 찬 마음으로 극장을 떠나셨으면 좋겠습니다.” 올해 칸영화제 주목할만한시선에 초청된 모 하라웨 감독의 말처럼, <천국의 옆 마을>은 따뜻하고 감동적인 영화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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