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 친절한 프로그래머 5 - 박선영 프로그래머 |
안녕하세요! 유난히 숨이 막힐 듯했던 폭염을 보내고 바람에 한 방울의 선선함이 녹아든다 싶을 즈음에는, 어김없이 ‘더 친절한 프로그래머’ 원고를 쓰게 됩니다. 계절의 변화를 영화제의 각종 마감 날짜에 맞춰 실감하고 있는, 6년 차 프로그래머 박선영입니다. 저는 부산국제영화제에서 중화권, 남아시아, 중앙아시아 영화들을 담당하고 있습니다. 올해도 너무 좋은 영화들을 많이 만났고, 그 중에서 총 서른한 편을 엄선하여 초청했습니다. 특히, 아시아 각국의 여성 감독들의 영화가 많이 선정되었는데, 뉴 커런츠, 지석, 온 스크린, 특별기획 프로그램 등 여러 섹션에서 다양한 장르의 여성 감독들의 영화를 찾아보시는 재미도 있으실 것이라 장담합니다. |
또, 올해는 칸영화제 등 주요 영화제들에서 아시아영화들의 선전이 눈부신 한 해이기도 했습니다. 칸영화제 경쟁부문 심사위원 대상을 받은 파얄 카파디아의 데뷔작 <우리가 빛이라 상상하는 모든 것>을 비롯하여 지아장커의 아름다운 서사시 <풍류일대>, 칸영화제 주목할만한시선상을 수상한 관후의 <블랙 독>과 <산토쉬 순경>, <블루 선 팰리스>, <백의창구(白衣蒼狗)>, <집으로 돌아가는 길> 등이 칸영화제에 초청되었고, 선댄스영화제 관객상을 받은 <걸스 윌비 걸스>, 상하이국제영화제 뉴탤런트각본상을 받은 <피쉬 본>, 카를로비바리국제영화제 감독상을 받은 <피어스>, 카를로비바리국제영화제 프록시마 경쟁작 <세컨드 찬스>, 베니스국제영화제의 <경찰관, 푸자>와 <몽골말 죽이기>, 토론토국제영화제의 <사바의 좁은 세상> 등이 부산을 찾습니다. |
이렇게 수상작들과 초청작들이 많은 한편, 주목할 만한 신작들도 너무나 많습니다. 지금부터 제가 애정을 가지고, 조금 더 자세히 소개해 드리고자 하는 영화들은 여러분이 부산에서 가장 먼저 발견하시게 될 영화들입니다. |
우선, 아시아의 신인감독들을 발굴하는 중요한 장으로 기능하고 있는 뉴 커런츠 섹션에는 총 세 편의 영화가 선정되었습니다. <동쪽으로 흐르는 강>은 상실의 트라우마에 잠식된 이들의 삶을 비추는 감각적인 영화로, 기억할 만한 신인 감독의 탄생을 알리는 반가운 영화입니다. <현대 모성에 관한 몽타주>는 이제 막 아이를 낳았을 뿐인데, 삶이 송두리째 달라지는 경험을 하게 되는 한 여성 파티쉐의 이야기를, 집요하고 촘촘한 서사로 담았습니다. 카자흐스탄의 <아벨>은 무려 13분 30초에 달하는 첫 시퀀스의 롱테이크씬이 압도적입니다. 때로는 담담하게, 때로는 거칠게 끌어가는 이야기가 매력적입니다. |
2017년 타계하신 故 김지석 선생님을 기리기 위해 만들어진 지석 섹션은 아시아의 중견 감독들의 신작을 대상으로 합니다. <빌리지 락스타>(2017)와 <노래하는 불불>(2018)로 세계 영화계를 놀라게 했던 리마 다스의 신작 <빌리지 락스타 2>는 10대 후반이 된 두누의 삶을 리얼리즘적이면서도 서정적인 카메라로 따라갑니다. 린슈위의 <옌과 아이리, 모녀 이야기>가 그리는 엄마와 딸, 그 지긋지긋한 애증의 관계는 양귀매와 하우교의 연기력으로 한층 강렬한 생명을 얻습니다. 다스탄 자파르 르이스켈의 <국경에서의 거래>는 국경지대 마약밀매 조직원이 겪게 되는 일련의 사건을 보여줍니다. 장르적이면서도, 절제된 대사와 구도가 눈길을 사로잡습니다. |
'10대의 마음, 10대의 영화' 특별기획 프로그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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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으로는 올해의 특별기획 프로그램 '10대의 마음, 10대의 영화'에 소개된 다섯 편의 영화가 있습니다. 그 중, 앞서 언급한 <걸스 윌비 걸스>는 16세 딸과 엄마, 딸의 남자 친구의 미묘한 관계를 그린 영화로, <우리가 빛이라 상상하는 모든 것>의 주연이기도 한 카니 쿠스루티가 엄마 역을 맡아 최고의 연기를 보여줍니다. <피쉬 본>은 당찬 열여덟 소녀 리치의 어느 여름을 그린 영화로, 촘촘한 서사와 인물들의 부딪힘이 매력적입니다. <여름날의 레몬그라스>는, 귀엽고 아련하고 사랑스러운 대만청춘영화의 모든 것입니다. 조우녕과 이목, 그리고 대만 보이그룹 출신으로 SHOU로 더 잘 알려진 루준석이 주연을 맡았습니다. 대만의 월드 프리미어 영화 <우리들의 교복 시절>은 1990년대의 향수를 자극하는, 야간고가 있었던 그 시절의 학교를 배경으로 합니다. 금마장 신인배우상을 수상한 진연비를 비롯한 연기파 신인들이 풋풋한 성장드라마를 보여줍니다. 작년 최고의 화제작 중 하나인, 베니스국제영화제 오리종티부문에서 남우주연상을 수상했던 몽골영화 <바람의 도시>도 다시 한 번, 특별기획 프로그램에서 여러분을 기다립니다. |
다음으로는 아시아영화의 창에서 만나게 될 월드 프리미어 영화들입니다. 그 중 <망향의 노래>는 베트남, 인도, 미국의 디아스포라 티베트인들의 이야기를 담은 옴니버스영화입니다. 티베트의 주요 예술인들이 힘을 모아, 그리움이 묻어나는 아름다운 망향의 노래를 완성했습니다. <상상의 여인으로부터 온 편지>는 올해 ACF 후반작업 지원작 중 한 편으로, 주인공이 붐 마이크를 들고 방안의 모든 소리를 채취하듯 서서히 움직이는 첫 씬이 매우 인상적인, 시적이고 몽환적인 영화입니다. <바닷마을 극단>은 고통과 상실의 순간을 보듬는 엄마와 딸의 이야기를 마음 따듯해지는 풍경과 함께 그려냅니다. 몽골영화 <트레버스티>는 묘한 매력이 있는 영화입니다. 인질극이 벌어지고 있는 작은 마을에서 동분서주하는 형사들의 이야기인데, 매우 장르적이고 정치적이면서 감각적인 화면이 눈길을 사로잡습니다. 그런가하면, 월드 프리미어로 소개되는 시리즈도 한 편 있습니다. 바로 <스포트라이트는 나의 것>이라는 대만의 12부작 드라마인데요, 백스테이지 드라마로, 개성 가득하고 생동감 넘치는 여성 캐릭터들의 향연과 이들 사이에 구축되는 다정한 여성 연대가 매력적입니다. |
인터내셔널 프리미어 영화도 있습니다. 카자흐스탄의 <사랑의 병정>은 자유분방한 영혼을 가진 뮤지션과 그를 사랑하는 지고지순한 아내의 이야기입니다만, 이 영화를 특별하게 만드는 것은 바로 뮤지컬이라는 장르입니다. 절대로 잊지 못할, 매혹의 군무 씬이 저를 사로잡았습니다. 정말, 퍼포먼스 장면들이 너무 멋집니다! 잊지 못할 매혹의 장면은 <부서진 마음의 땅>에도 나옵니다. 이 영화는 <트루먼 쇼>의 모티프를 빌려와 한껏 비튼 영화라 할 수 있을 텐데요, 외계인들(진짜 외계인입니다!)이 주인공의 연애를 응원하며 백 뮤직과 함께 풍선과 비눗방울을 날리는 장면의 사랑스러움은, 입가에 절로 미소를 짓게 합니다. |
마지막으로 소개해 드릴 영화는, 2024년 상반기 인도 최대의 화제작인 <칼키 AD 2898년>입니다. 포스터나 예고편 티저만 봐도 어떤 영화인지 바로 감이 오실텐데요, 무려 6,000년의 시공간을 넘나드는 SF 액션 히어로 판타지 대작입니다. <바후발리>의 프라바스, <옴 샨티 옴>의 디피카 파두콘, 그리고 <비크람>의 카말 핫산이 주연을 맡았습니다. 두근두근, 하는 마음을 안고 야외극장에서 이 멋진 스펙터클을 즐겨주시기를 바랍니다. |
올해도 많은 영화들을 간략하게 소개해 드리자니, 시간과 지면은 부족하고 마음은 아쉽기만 합니다. 더 많은 이야기들은, 아마도 영화제 기간에 극장에서 얼굴을 보면서 할 수 있지 않을까요? 방금 소개해드린 영화들의 감독님들과 배우들이 관객 여러분들을 만나기 위해 부산을 대거 방문하실 예정이니까요. 깊어가는 가을, 부산에서 기다리겠습니다. 감사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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