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영화의 창
강변의 착오1990년대 중국의 한 작은 시골 마을에서 거위를 키우던 노인이 살해당한다. 노인이 거둬준, 마을에서는 ‘미친놈’이라고 불리는 노숙자가 용의자로 체포된다. 담당 형사 마저는 현장에서 핸드백을 발견하고, 그 안에 있던 녹음테이프의 비밀을 쫓기 시작한다. 대부분 16mm 필름으로 촬영된 <강변의 착오>는 어둡고 끈적하고 거친, 누아르 영화의 스타일을 16mm만의 질감으로 구현해 낸다. 그러나 이 영화는 범인을 잡...
온 스크린
거래준성(유승호)과 재효(김동휘)는 오랜만에 고교 동창 민우(유수빈)를 만나 밤새 술을 마신다. 다음 날 아침 재효는 자신도 모르게 민우 엄마에게 전화로 이렇게 말한다. “당신 아들을 데리고 있습니다. 10억 준비하세요.” <거래>는 곤경에 처한 이들이 벌이는 우발적이며 아이러니한 납치극이다. 의대생인 재효는 커닝을 했다는 이유로 퇴학당할 위기에 놓였고, 준성은 입대 전에 진 사채가 어마어마하게 불어나 앞날이 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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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드리의 솔루션북<이터널 선샤인>(2005)을 연출한 미셸 공드리 감독의 신작으로 2015년 연출작 <마이크롭 앤 가솔린>(2015) 이후 8년 만의 작품이다. 2013년 <무드 인디고>를 촬영하면서 경험한 공드리 감독의 개인적 경험을 바탕으로 하는 이 영화는 사라져 버린 영감과 창작력을 되찾으려는 괴짜 영화감독 마크의 고군분투를 담고 있다. 마크는 자신을 해고하려는 영화사의 경영진으로부터 편집자와 함께 도망친다. 촬영분을 ...
한국영화의 오늘
괜찮아 괜찮아 괜찮아!고등학생 인영(이레)은 교통사고로 엄마를 잃게 된다. 혼자 남겨진 그녀에게 세상은 꽤 살벌하지만, 이 소녀 생각보다 강하고 밝고 씩씩하다. 쏘아 대는 입담이며 저돌적인 근성이며, 어디 내놓아도 살아남을 기세다. 한국 무용을 하는 인영은 밀린 집세 때문에 쫓겨나자 자신이 속해 있는 예술단에 숨어 생활하다 깐깐하기로 이름난 예술단 감독 설아(진서연)에게 들키게 된다. 하지만 둘은 서서히 가까워진다. 한편 인영은 ...
갈라 프레젠테이션
괴물학생 인권 보호인가? 교권 보호인가? 최근 한국 사회를 뒤흔든 이 문제에 정말 진지하게 접근하고자 한다면 <괴물>을 봐야 할 것이다. 어느 한쪽의 주장이 아닌 사건의 실체를 보여주기 위해 고레에다 감독은 사려 깊은 태도를 보여준다. 누군가를 매도하는 손쉬운 해결책을 피하는 그의 영화는 개인과 가족과 사회의 여러 측면을 두루 조망한다. 초등학교 5학년 미나토가 담임 선생님에게 입에 담지 못할 말을 듣고 구타도 ...
와이드 앵글
그 모든 거짓말의 어머니전작 <더 포스트카드>(2020)에서 어머니를 통해 정체성을 찾아간 작업은 신작에서 할머니 쪽으로 연결된다. 영화는 할머니와 함께 살았던 가족을 경유해 모로코의 현대사에 접근하는데, 그 중심에는 1981년에 정부의 식량 정책에 맞선 민중 항거가 놓여 있다. 아버지와 어머니가 손수 만든 인형과 미니어처가 무대를 빚고, 비극의 현장에 있던 이웃이 등장해 드라마를 구성한다. 아름다우나 깊은 슬픔이 밴 무대는 깨어나...
뉴 커런츠
그 여름날의 거짓말고등학교 1학년생 다영은 여름 방학 동안의 추억을 써내야 하는 방학 숙제에 같은 학년 남자 친구 병훈과 있었던 연애와 갈등에 관한 일들을 적는다. 충격적인 내용에 관한 담임선생의 추궁이 이어지고, 다영은 반성문을 쓰게 된다. 반성문의 내용이 영화로 펼쳐진다. 순진하고 계몽적이어서 시시한 보통의 성장 영화 따위는 상상하지 않는 것이 좋겠다. 예측할 수 없이 출몰하고 축조되는 사건과 구조가 내밀한 감정을 쌓아 가...
와이드 앵글
그날의 딸들4.3 항쟁의 구술 작가인 양경인과 한국으로 유학 온 르완다인 파치스가 마주 보고 대화한 다음 나란히 손을 잡고 여행을 떠난다. 세대도 국적도 하는 일도 다른 두 사람은 대학살 생존자의 딸이라는 공통점이 있다. <그날의 딸들> 은 제주 4.3 항쟁과 르완다의 제노사이드가 얼마나 닮은꼴의 비극인지를 말하지만 거기서 멈추지 않는다. 과거를 들여다본 다음 미래로 시선을 향하는 이 치유의 여정은 제주에서 르완다로 향...
지석
그녀에게매사 계획한 대로 이루고야 마는 당차고 유능한 정치부 기자 상연(김재화). 오랜 기다림 끝에 쌍둥이 남매를 낳지만, 둘째 지우가 발달장애 2급 판정을 받는다. 그때부터다. 상연은 더 이상 이전의 상연일 수 없고 모든 게 바뀌었다. 실제로 전직 기자이자 장애 아이를 둔 엄마의 자전적 이야기를 원작으로 한 <그녀에게>는 10여 년의 세월을 거치며 장애가 있는 자식을 둔 부모와 그 가정이 겪게 될 실질적이고 구체적...
와이드 앵글
깜빡이는 불빛인도-미얀마 국경 근처의 외딴 마을 토라에는 도로가 없고 수도가 없고 학교나 병원도 없다. 인도 독립 70주년이 훌쩍 지났지만 오랜 반란의 역사 탓에 세상에서 밀려나 잊혀진 마을 토라에 어느 날 전기가 들어온다는 소식이 전해진다. 마을 사람들은 반신반의하면서도 올해 크리스마스에는 환한 불빛을 볼 수 있으리라는 장밋빛 희망에 들뜬다. 구멍가게 아주머니는 냉장고를 들여 아이스크림을 만들어 팔 생각에 마음이 들썩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