와이드 앵글
철선경상남도 산청군 경호강변에는 한센인들이 거주하는 성심원이 자리 잡고 있다. 한국 전쟁 이후 구호물자를 처분해 구매한 강변의 땅이 한센인들에게 소중한 정착지가 되었고, 경호강 이편과 저편을 잇는 성심교가 놓이기 전까지 나룻배 '철선'만이 그들이 세상과 소통할 수 있는 유일한 통로였다. 현재 성심원 한 편에서 쉬고 있는 이 "조그만 철판때기 배"에는 시린 세월이 배어있다. 성심원 60주년 기념 영상 제...
한국영화의 오늘
초록밤영화가 시작되면 ′초록밤′이라는 초록의 제목이 커다란 크기로 화면을 한가득 채운다. 멋진 디자인이다. 이 영화에 대한 신뢰는 이 순간에 이미 결정된다. 사각의 프레임 안을 어떻게 채우고 비울 것인가 하는 문제에 있어서 <초록밤>은 과감하면서도 유려하다. 초록은 이 영화의 운명의 색이다. 아파트 야간 경비원으로 일하는 무력한 아버지, 살림을 도맡아 하는 지친 어머니, 가난한 장애인 활동 보조사 아들,...
특별기획 프로그램
칠판인상적인 오프닝 시퀀스는 검은 칠판을 등에 지고 움직이는 일군의 남성들을 보여준다. 교실 벽면에 부착되어 있어야 할 칠판은 이 영화에서 가장 역동적인 피사체가 되어 이란과 이라크 접경지대를 이동한다. 국가가 부재하는 쿠르드족 디아스포라를 다룬 <칠판>은 1980년대 이란-이라크 전쟁에 대한 세계적 관심을 불러일으킨 첫 번째 장편영화이다. 이 영화에서 칠판은 가난과 권리 없음의 상태로부터 벗어나게 할 인류의 지...
아이콘
카우<카우>는 굉장히 특이한 다큐멘터리다. 처음부터 끝까지 농장에서 키워지는 젖소 루마와 갓 태어난 아기 젖소의 일생을 카메라에 있는 그대로 담은 이 작품엔 다큐멘터리에서 흔히 사용되는 인터뷰도 나레이션도 없다. 하지만 아무런 상황 설명조차 없는 이 작품은 관객들을 영화 속으로 흡입시키는 신비한 힘을 가지고 있다. 실제로 올해 칸영화제에서 처음 소개되었을 때 많은 센세이션을 일으켰다. 안드레아 아놀드 감독은 작품...
특별기획 프로그램
카일리 블루스비간의 영화 세계에서 과거, 현재, 미래의 시간 구분은 무용하다. 시간성을 전제하는 각기 다른 공간들 역시 얼마든지 연결되고 병치되며 공존할 수 있다는 뜻이다. 비동시적인 것의 동시적 존재, 혹은 그러한 상태가 비간의 장편 <카일리 블루스>에 정확히 기입되어 있다. 감옥에서 출소한 첸은 조카 웨이웨이를 찾아 카일리를 떠나 전위안으로 향한다. 그 길목에서 그가 당도한 곳은 가상의 천변 마을 당마이. 그곳에서 첸...
월드 시네마
캅 시크릿순도 100% 재미를 안겨줄 형사 버디물 <캅 시크릿>은 극장 스크린으로 봐야 체감할 수 있는 스케일을 자랑한다. 최고의 검거율을 자랑하는 터프가이 부씨는 불 같은 성격 때문에 종종 어려움에 빠지는 반면, 그의 새로운 파트너 회르뒤르는 비싼 디자이너 수트 만큼이나 매끄러운 솜씨를 뽐낸다. 하나에서부터 열까지 어울리지 않는 두 사람은 아무것도 훔치지 않는 은행 강도 사건이 연이어 발생하자 수사에 투입되고, 끊임...
한국영화의 오늘
컨버세이션2019년 부산국제영화제 뉴 커런츠 부문 초청작 <에듀케이션>으로 많은 호평을 받은 바 있는 김덕중 감독의 두 번째 장편. 전작을 뛰어넘어 더 세련되고 내밀해졌다. <컨버세이션>은 은영(조은지)과 승진(박종환)을 중심으로 주변 인물들이 장면마다 등장하여 추억과 젊음, 연애와 사회, 혹은 아주 소소한 소재에 이르기까지 일상의 언어와 리듬으로 대화를 나눈다. 빛나는 연기, 리드미컬한 대화, ...
아시아영화의 창
쿠스리야르 가는 길드루브는 어린 시절 돌아가신 어머니의 영향을 받아 야생동물학자가 된다. 그리고 인도 남부의 타밀 나두주에 있는 코다이카날 야생동물 보존구역의 포유동물을 관찰하기 위해 현장 연구를 수행하러 간다. 40년이나 된 오래된 지도와 간단한 GPS 장치만 가지고 휴대전화 신호도 잘 잡히지 않는 600평방 킬로미터의 야생의 자연을 헤쳐 나가는 것은 매우 어려운 일이다. 그래서 현지인의 도움은 필수고 그는 도레이라는 가이드...
와이드 앵글
크로싱 엔드2002년 겨울밤, 이십 대 초반의 커플이 다리 위에서 결별을 말하던 중 여자가 난간 아래로 추락한다. 자살인가, 사고사인가? 남자는 친구에게 도움을 요청해 구급차를 부르지만 여자는 결국 죽고, 남자와 그의 친구는 살인죄로 수감된다. 목격자가 최초의 진술을 뒤집고 그들이 여자를 다리 아래로 던지는 걸 봤다며 말을 바꿨기 때문이다. 10여 년의 시간이 흐른 뒤, 시요룬 감독은 부당하게 유죄판결을 받은 무고한 이...
월드 시네마
키아라조나스 카르피냐노는 이탈리아 남부 칼라브리아를 배경으로, 느슨하게 연결된 연작을 만들어 왔다. 칼라브리아는 범죄로 얼룩진 세계의 축소판이다. <지중해>(2015)에서 부르키나파소 출신의 남자는 검은 눈물을 삼키고, (단편을 확장한) <치암브라>(2017)는 성인 행세로 생존하는 집시 소년을 이야기한다. 지명을 뺀 세 번째 작품은 15살 소녀를 주인공으로 내세운다. 범죄에 연루된 아버지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