와이드 앵글
피아노 프리즘잡다한 물건으로 가득 찬 비좁은 공간에서 파자마 차림의 남자가 이쪽 벽에서 저쪽 벽으로 힘겹게 피아노를 옮긴다. 피아노가 놓인 벽 쪽으로 자신이 찍은 영상을 프로젝트로 쏘자 피아노를 연주하는 그의 모습 위로 검푸른 물결이 일렁인다. 후줄근한 현실에서 예술적 환상으로 단숨에 도약하는 마술적인 오프닝이다. 화가에서 영화감독으로, 이제는 피아니스트가 되려는 오재형 감독이 영상과 피아노 연주를 결합한 독특한 오디오 ...
플래시 포워드
하늘을 바라본다, 바람이 분다첫 눈에 반하다니, 얼마나 낭만적이면서도 비현실적인 감정이란 말인가. 그러나 위대한 로맨스는 본래 그렇게 시작하는 법, <하늘을 바라본다, 바람이 분다> 또한 다르지 않다. 영화는 리사와 조르지가 처음 만나, 사랑이 싹트고, 사랑이 시험에 드는 과정을 마치 동화 속 이야기처럼 속삭이듯 들려준다. 그들은 하루 아침에 얼굴이 바뀌고, 직업을 잃고, 온 마을이 월드컵에 열광하고, 그렇게 삶은 계속된다. 떠돌이 개가...
아시아영화의 창
하루하라상의 리코더순하고 착한 버전의 홍상수 영화라고 해도 될까? <하루하라상의 리코더>는 익숙한 드라마라면 채워져 있어야 할 곳이 비어 있는 영화다. 주인공의 사연을 구구절절 풀어놓는 대신 주인공이 경험하는 몇 가지 사건들이 얼핏 아무 맥락도 없는 듯 펼쳐진다. 주인공 사치는 아르바이트로 카페에서 일하고 있다. 새로운 아파트로 이사를 가서 그곳에 살던 전주인과 대화하는 장면이 나오고, 카페에서 손님을 만나는 장면이...
월드 시네마
하이브전쟁에서 실종된 남편을 둔 수많은 코소보의 여인들처럼, 파흐리는 시아버지와 아이들을 돌보느라 슬퍼할 겨를조차 없다. 생계를 유지하기 위해 운전면허도 따고, 벌침을 맞아가며 양봉하고, 같은 처지의 여성들과 함께 고추장 소스를 만들어 마트에 납품하지만, 보수적인 마을 사람들에게는 이러한 자구책조차 가부장 체제에 반기를 드는 것으로 비추어진다. 실존 인물을 모티브로 한 영화는 평범한 여성들의 생존을 위한 행위가 편...
한국영화의 오늘
한 끗어두운 밤, 골목길에서 담배를 나눠 피우며 걷고 있는 두 남녀. 그들은 선후배 형사다. 이 밤에 둘의 사정은 조금 복잡하다. 그들은 지금 범인 검거 현장을 조작하여 재연해야만 한다. 어떠한 이유인지 검거한 범인을 다시 데려와 방송국 사람들을 속여, 실제와 다른 조작된 방송을 내보내려 한다. 하지만 일은 계획대로 되지 않고 점점 더 꼬여만 간다. 영화는 내내 몇 개의 골목길과 허름한 건물 등 제한된 장소에서만 ...
개폐막작
행복의 나라로오랜 기간 복역해 온 죄수 번호 203(최민식)은 이제 나이가 들었다. 그가 바라는 것은 어서 빨리 출소하여 세상 밖으로 나가는 것뿐이다. 하지만 203은 갑작스러운 몸의 이상을 느끼고, 뇌종양으로 인한 시한부 3개월이라는 청천벽력 같은 소식을 듣는다. 그렇게 그의 탈옥은 시작된다. 203은 탈주 과정 중 예기치 않은 동행인을 만나게 되는데, 희귀 난치병을 앓고 있지만 값비싼 약값을 치루지 못해 병원마다 필요...
월드 시네마
홀드 미 타이트영화의 첫인상은 카사베츠의 <영향 아래 있는 여자>(1974)에 가깝다. 정신적으로 불안한 여성이 남편과 아이들을 두고 벌이는 일탈의 행동. 그런데 시간이 지날수록 빈센트 갈로의 <브라운 버니>(2003)와 비슷한 유의 영화처럼 보인다. 길 위에 선 인물이 과거의 어떤 지점을 향해 거꾸로 떠나는 여정. 단순해 보였던 영화는 결코 선형적이지 않은 구조다. 30분 정도의 지점에서 얼핏 갈피를...
아시아영화의 창
화이트 빌딩한때 캄보디아 수도 프놈펜의 도시화와 근대화를 상징하던 화이트 빌딩. 세월이 흘러 건물은 낡고 사람들은 하나 둘 떠나간다. 철거와 이주를 앞두고 보상금 문제로 주민들 간 대립이 심화되는 상황. 영화는 힙합 댄서를 꿈꾸지만 녹록하지 않은 현실과 마주하는 청년 썸낭과 입주민을 대표하여 정부 측과 협상을 하지만 별다른 힘을 못 쓰는 그의 아버지를 중심으로 담담하게 진행된다. 실제 이곳에서 나고 자란 감독의 자전적 ...
아시아영화의 창
후다의 미용실<천국을 향하여>(2005), <오마르>(2013) 등으로 유명한 팔레스타인의 거장 하니 아부-아사드의 신작. 팔레스타인과 이스라엘 정보기관의 치열한 정보 전쟁에 이용당한 여자들의 숨 가쁜 생존 투쟁을 그리고 있다. 나디아는 머리를 자르러 후다의 미용실에 들렀다 상상할 수 없는 일을 겪는다. 후다는 나다아에게 이스라엘 정보기관의 끄나풀이 되라는 협박을 한다. 어찌할 바를 모른 채 집에 돌아온 나디아는 후다가 ...
아시아영화의 창
흥정여행사를 운영하는 리우는 이윤이 나지 않는 회사를 빨리 팔아치우고 싶다. 어느 날, 입사한 직원이 석연치 않은 이유로 뇌사 상태에 빠지게 되면서 그의 가족과 온 마을의 친척들이 리우에게 몰려와 합의금을 요구한다. 한편 중학교 교사로 일하고 있는 리우의 전처 타오징은 결혼을 미루는 애인과 그의 사춘기 딸 때문에 골치를 썩고, 내세울 스펙도 없고 하고 싶은 일도 없는 아들 이판은 우연히 불법 자동차 운행을 하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