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30년대의 인도 케랄라를 무대로 펼쳐지는 비극적인 사건을 다룬 [비가 내리기 전]은 식민 지배계층과 피식민 인종 간의 지속될 수 없는 우정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인도사람인 T.K는 좋은 보스인 헨리 무어 Henry Moores를 도와 농장을 건설할 계획을 세우지만, 더 풍요로운 세상을 만들고자 하는 그들의 노력은 식민지 인도의 현실에서 결코 벗어날 수 없다. 무어가 불륜을 나누는 인도인 여자 가정부 사자니와의 관계를 계기로 무어와 T.K, 사자니의 삶은 돌이킬 수 없는 구렁텅이에 빠지게 되는데, 이 지점에서 어쩔 수 없이 그들은 식민 지배층과 피식민 계층의 넘을 수 없는 경계를 실감하게 된다. [비가 내리기 전]은 딱히 서양인과 동양인 사이의 비극적인 사랑의 열정을 다룬 것도, 농밀한 우정을 담은 것도 아니면서 왜곡된 역사적 현실의 굴레에서 자유로울 수 없는 불우한 개인들의 운명을 끈적끈적한 대지의 습도가 화면에서 느껴질 듯한 연출로 그려낸다. 인도 감독 산토시 시반은 미국과 영국의 자본을 끌어 들여 완성한 이 영화에서 보편적이면서도 로컬리티를 잃지 않는 독특한 색깔의 비극을 보여준다. (김영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