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년 6월 중앙아프리카공화국. 폭우 속에 악기를 연주하는 흑인소년의 모습으로 영화는 시작된다. 카메라는 이어서 서양 법의학자와 전문가들이 2002년 대량학살의 피해자들을 방문하는 모습을 비춘다. 그리고는 헤이그에 본부를 둔 국제사법재판소로 이동한다. 영화는 증인들, 파견된 서구인들, 법조인들을 병행해서 보여준다. <카르트 블랑쉬>는 스위스 중견 다큐멘터리 감독인 하이디 스페코냐가 심혈을 기울여 만든 역작으로, 전쟁터의 군인들 못지않게 위험에 노출되어 있는 국제사법재판소 법조인들의 도전을 다룬다. 그들은 중앙아프리카공화국을 대상으로 반인류 범죄를 저지른 콩고의 반군 지도자 장 피에르 벰바를 어떻게 해서든지 법정에 세우고자 한다. 그러나 인내와 시간을 필요로하는 쉽지 않은 일이다. 이 영화는 헤이그 재판소를 사상 처음 카메라에 담은 작품으로 다큐멘터리의 정신이 무엇인지를 새삼 일깨우는 수작이며 로카르노에서 특별상영되었다. (이수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