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억을 전달하는 기억에 관한 영화. 영화감독 ’앤’은 격동의 70년대 태국에서 있었던 군부에 의한 대학 학살 사건을 바탕으로 한 영화를 만들고자 한다. 그녀는 시나리오 집필의 준비과정으로 학생 운동을 이끌었던 사건의 생존자이자 유명한 작가가 된 ’띠우’를 만나 인터뷰를 진행한다. 태국의 외딴 마을에서 두 사람은 점점 가까워지는데, 어느 날 누구일 수도 있고 아무도 아닐 수 있는 낯선 이로부터 띠우의 이야기는 스스로 전달하는 것이 제3자인 앤이 영화로 만드는 것보다 낫지 않겠냐는 질문을 받는다. 데뷔작 <우주의 역사>(2009)로 과거와 미래를 잇는 현재에 대한 성찰로 놀라움을 안겨준 감독은 두 번째 장편에서 역시 정체성에 대한 이야기를 보다 개인적이고 직접적으로 말하고 있다. 과거로부터의 연속된 기억이 개인과 집단의 정체성을 형성하는데, 기억이란 사실과 허구가 뒤섞이기도 하고 주관적인 가치에 따라 편집되기도 한다. 그렇다면 진짜 정체성이란 무엇인가? 감독은 기억을 재연하고 보존하는 장치로서 영화라는 매체가 얼마나 적합한 것인지 겸손하게 질문을 던지는 듯하다. (박성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