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77년 군부독재정권하의 부에노스아이레스. 40대 회사원 프란시스코 산티스의 유일한 걱정은 오랫동안 기다려온 승진 여부다. 하지만 그를 기다리고 있는 것은 승진이 아니라 20년 만에 그를 찾아온 대학 시절 친구 엘레나다. 그녀는 곧 군대에 의해 체포될 위기에 처한 두 남자에게 은밀히 경고해 달라는 부탁을 남긴다. 밤이 찾아오고, 산티스는 생면부지의 남자들을 위해 위험을 감수할지 무시해 버릴지 고민에 빠진다. <산티스 씨의 기나긴 밤>은 젊은 시절 혁명을 꿈꿨지만 이제는 평범한 회사원인 한 남자의 정치적 자의식과 도덕을 하룻밤 동안의 시험대에 올린다. 성공할지 실패할지 모르는 그의 임무는 서사를 이끄는 원동력이지만, 시간이 갈수록 관객을 사로잡는 건 정치적 명분과 공포 사이를 오가며 증폭되는 산티스의 편집증, 그리고 이를 시청각적으로 전달하는 전형적인 필름 느와르의 양식이다. 당대를 재연하는 꼼꼼한 고증을 바탕으로 세심하게 고려된 촬영과 조명이 돋보인다. (박진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