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지니’라는 소녀는 자신이 이제 막 분쟁에서 살아남았으며, 망명을 하고 싶다고 말한다. 그녀는 ‘츠나미 아카라’는 사람이 운영하는 고아원으로부터 왔으며 그곳에서 지금까지 어떻게 살아왔는지를 털어놓기 시작한다. 인도의 촬영감독 출신 연출자인 산토시 시반 감독은 스리랑카 내전의 민간인 학살을 소재로 하여 다큐멘터리적인 이미지 속에 캐릭터와 스토리를 촘촘하게 엮어가는 독특한 연출력으로 또 하나의 걸작의 출현을 알리고 있다. 평화와 행복의 기운이 넘치는 한 고아원의 나날들을 보여주는 전반부는 흡사 필리핀 감독 키들랏 타히믹이 공동체를 그리는 방식과 유사하게 생동감 넘치고 있으며 라지니의 무색무취한 내레이션과 자유로운 카메라 움직임은 테렌스 맬릭의 몇몇 영화들을 연상시키기도 한다. 시점쇼트를 표현하기 위해 동원된 핸디 카메라의 특이한 앵글들은 이 영화의 관심이 관객들과 이 인물들과의 직접적인 교감을 매개하는 일에 있음을 말해준다. 하지만 본격적으로 진행되는 전쟁의 포화 속에서 고아원으로 상징되는 평화와 행복의 이미지가 파괴되어 가는 것을 보여주는 후반부는 우리가 여전히 전쟁 중인 현재에 살고 있음을 새삼 환기시킨다. (박진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