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많은 영화에서 화려한 액션을 선보였고, 조연에 악당일지라도 명대사를 가지기도 했던 왕년의 스타 수디르는 이제 늙고 초라해진 스스로를 받아들이며 무기력하게 살아가고 있다. 그러던 어느 날, IMDB 사이트에서 자신의 필모그래피가 무려 499편에 달한다는 정보를 알게 된다. 한 젊은 영화 매니아는 수디르의 배역들을 기억하고 있어 신기한데다, 500번째 역할이 탐이 난다. 그래서 가발을 쓰고 잘 차려 입고서 영화 현장으로 달려간다. 한때 날렸던 영화배우가 500번째 배역을 받고 좌충우돌하는 과정을 그리는 코미디이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인생의 황혼에서 되돌아서서 삶의 의미를 되새기며 진짜 어른의 역할이 무엇인지 깨닫게 하는 페이소스 넘치는 드라마다. 채플린과 키튼 말년의 <라임라이트>처럼 무대를 배경으로 작품을 만드는 과정에서 스스로에 대해 성찰하는 자기반영성이 돋보이는 영화다. 찬란한 영광은 사라지고 새로운 세대가 그 자리를 대체할 때, 나이 먹는다는 것은 초라함이 아니라 그 자체로 즐길 거리임을 알려준다. (정민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