톨스토이에 따르면, 마을은 자체로 하나의 세계며, 그 마을에서 벌어지는 일을 제대로 관찰하고 묘사할 수 있다면 언제 어디서나 통용되는 보편적 진실에 근접할 수 있다. 유화 애니메이션 <러빙 빈센트>(2017)에서 반 고흐의 화풍을 영상으로 재현해 호평을 얻은 DK 웰치먼(도로타 코비엘라), 휴 웰치먼 부부가 이번에는 노벨문학상을 수상한 대하소설 『농민』을 스크린으로 옮겼다. 실사로 촬영된 수만 개의 프레임에 일일이 색칠을 더해 19세기 폴란드 마을 립세의 사계절 풍경을 구현하는 작업은 팬데믹과 전쟁으로 지연되면서 어렵사리 완성될 수 있었다. 천 페이지가 넘는 방대한 분량의 소설을 두 시간의 러닝타임으로 압축하는 과정에서 아름다운 처녀 야그나를 중심으로 스토리를 재편했지만, 영화 속 모든 갈등은 땅에 대한 갈망에서 시작되며 등장인물들의 모든 행동은 궁극적으로 땅을 갖기 위한 투쟁이다. 마을을 오랫동안 지탱해 온 질서와 통념에 야그나가 격렬하게 저항하는 순간, 그 세계에 혼돈의 균열이 나타나는 양상이 자못 흥미롭다. (박가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