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막걸리가 알려줄거야>를 보며 어린 시절의 추억들이 많이 생각났다. 어린이 TV 프로그램 <뽀뽀뽀>나 <TV유치원 하나둘셋>, 혹은 <꼬꼬마 텔레토비>. 어릴 때 제사나 차례를 지낼 때마다 어른들이 주는 막걸리 음복 한 잔에 머리가 알딸딸해졌던 기억 등등. 그 시절 나는 학원을 다니지 않았다. 사교육이라는 말 자체를 모르고 자랐다. 키는 얼만큼 커야만 하고, 대학은 반드시 어디로 가야 한다는 어른들이 내 의지와는 상관없이 정해놓은 목표 같은 것도 없었다. 그 시절로 다시 돌아가고 싶을 정도로 아주 행복했던 건 아니었지만 그렇다고 그렇게 불행하지도 않았다. 나름 충분히 잘 놀면서 컸기 때문이다. 지금 생각해보면 천만다행인 일이었다. 그런데 이 영화 속의 주인공 여자아이 동춘이는 어떤가. 아이로서 누려야할 온갖 놀 권리를 전부 박탈당한 채 학교에서 학원으로, 학원에서 또 다른 학원으로 이어지는 사교육 컨베이어 벨트에 갇혀있다. 동춘은 엄마에게 왜 이걸 해야만 하냐고 묻지만 엄마의 대답은 동춘을 이해시키지 못한다. 사실 엄마도 그걸 잘 모르는 것 같다. 배우 박효주가 연기한 동춘의 엄마가 동춘이에게 단 한 번도 큰 소리로 화를 내거나 윽박지르지 않는다는 사실은 중요하다. 엄마는 늘 아주 나긋나긋하게 동춘을 사교육으로 내몰지만 다른 대안을 생각하지 못한다. 아마도 남들이 다들 하니까 내 자식도 뒤처질 순 없다는 마음에, 그렇게 떠밀려가는 것이겠지. 다른 한편으로는 유일하게 동춘과 막걸리의 존재를 이해하는, 배우 김희원이 연기한 동춘의 외삼촌도 주목할 필요가 있다. 그는 엘리트 코스를 착실히 밟은 후 안정적인 중산층 가정을 이룰 수 있는 남자였으나, 갑자기 세상 모든 속박을 벗어던지고 떠나고픈 ‘자연인’이 되었다. 자유를 갈망하는 그는 동춘의 엄마와 대조를 이루면서 어른으로 어떤 삶을 살아야 하는지에 대한 인생의 두 갈래 길 같은 역할을 한다.
나는 영화 <막걸리가 알려줄거야> 속의 그 막걸리를 보며 스티븐 스필버그의 <E.T.> 속 그 외계인 E.T.를 떠올렸다. 이 말이 이 영화가 <E.T.>와 동급의 영화라는 뜻은 아니다. 어른들은 이해하지 못하는 아이만의 어떤 존재. 그렇기에 박해받는 그 존재. 아이를 어떤 구원으로 이끌 존재라는 점에서 그랬다. 구원? 그렇다. 아마도 누구든 이 영화를 얘기할 때마다 영화의 엔딩에 대해서 논쟁하게 될 것 같다. 이 엔딩은 구원인가? 아니면 음... 이 엔딩을 어떻게 받아들이느냐에 따라서 이 영화를 사랑할 것인가 아닌가가 나뉠 것이다. 이 리뷰를 모스 부호로, 혹은 페르시아어로 번역해서 올리고 싶은 이상한 충동을 간신히 참아내고... 김다민 감독은 이보다 더 좋은 영화를 만들 수 있는 재능이 있어 보인다는 말을 끝으로 글을 마친다.